자이언 카페에서 마카롱 3 개를 포장해서 사 갔다는 정보가 내 귀에도 들렸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학원에 다녀온 산이다. 지금은 겨울 방학이라 아이 표정에 여유가 있다.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는 듯하다. 산이가 여자 친구 생겼다는 이야기를 내가 했던가. 그 아이 이름이 입에 붙지 않는다. 강이 친구 이름하고 같아서 잊지는 않았는데 흔연스럽게 우리들 대화 중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익숙해져야 하나 보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동경 가족이란 영화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오지 않던가.
"그러니까 저번 여자 친구보다 훨씬 낫던데요."
"저번이라니, 그런 소리 하지 마."
"아, 그렇지, 그러니까 그건 비밀이네, 쉿!"
산이는 초등학교 다니면서 같은 반 친구를 사귀었다. 알다시피 아침에 고백하고 저녁때 헤어지는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그것이 그 또래의 매력이며 웃음이고 행동이다. 꼬맹이들끼리 떠들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많은 편인데, 7번을 사귀다가 7번을 다 헤어지자고 했다면서 '솔로'인 것을 슬퍼하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말하는 연애는 그런 것이다. 바탕은 초등학생, 흉내는 어른 흉내, 실제는 조금 더 친한 정도 하지만 남들 눈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사이. 그러니까 좀 과대 포장된 선물 상자 같은 것이다. 그럴 때 산이하고 그 아이는 남달랐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고 그때마다 산이가 무언가 상대를 위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부모나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이 1년이 되고 2년이 됐다. 물론 초등학교를 졸업할 시점에 두 아이는 헤어졌다. 무슨 사연으로 서로 헤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산이와 그 아이는 헤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별다른 동요가 없어 보여서 내심 안심이었다가도 과연 그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태연한 편이었다. 그런 것이 납득이 되다니, 하여튼 나와는 다른 세대가 분명한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었다.
오히려 나는 그 뒤로 조심했던 거 같다. 이렇게 편하게 이름을 적고 일기를 적을 것만은 아니겠다는 조심성이 도졌다. 아이들이 비밀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 집 부모님들에게 연락해서 식사도 함께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이유 막론하고 일에는 뒤처리가 따르지 않는가. 그때에도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시간이다. 흘러가는 것들에 맡기면 그만큼 편하고 자연스럽다. 산이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벌써 3학년에 들어섰다.
전화 통화가 부쩍 늘었다. 몇 번인가 밤늦은 시간에 통화를 하다 나한테 걸리고 내가 먼저 물었다.
"남다른 상대인 거 같은데?"
"아직은 아녀."
아직이란 말이 우습기도 하고 내 경험칙에 비춰보면 '아직'일 때 '이미' 그 길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말릴 것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왜 삶은 중요한 고비에 꼭 둘 중에 하나로 길을 좁혀 놓았을까.
햄릿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장난이 좋다.
그런데 자식 일은 장난기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장난을 치되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일단은 속으로만 챙겨놓는다. 날라리는 아니어야 하는데, 저 녀석이 여우 같은 가시네한테 휘둘리면 정신 못 차릴 텐데.
그러니까 일요일에 산이는 점심부터 저녁 6시까지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다.
사실 궁금하지는 않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미안하지만 꿈을 묻고 싶다.
"그 아이는 꿈이 뭐래?"
"안 물어봤는데?"
"그런 이야기하면 좋지 않겠냐?"
나는 은근슬쩍 내가 원하는 데이트를 코디하고자 한다. 그리고 또 알게 모르게 지원사격을 하려고 준비한다. 연애는 아슬아슬하고 슬프고 호빵같이 커다란 것이 앙큼하게 달콤하기도 하니까. 힝.
산이는 6시 전에 돌아왔다. 나는 당부한다. 여자 아이네 집에서 걱정하지 않도록, 최소한 그것은 지켜주라고. 나는 용감하지 못해서 그런 말도 애들 엄마한테 말해놓는다. 내가 이렇게 근청스럽게 살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나중에 그럴 것이다. '엄격하고 완고하며 대화하기에 무서운 사람'이라고.
아버지는, 평생을 섬에서 촌부로 살아온 동경 가족에 나오는 할아버지도 그랬다. 아이들은 늘 동경을 닮고 서울을 닮으면서 자라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들은 또 그렇게 섬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산이 연애 이야기를 쓰려다가 동경 가족이란 영화를 소개하게 됐다.
우리 강이가 그랬다.
"지금 나만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 옆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애들 엄마가 그제야 반가워하며 웃었다.
"엄마도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드라마 같은 저 영화, 실제 같은 저 스토리가 차분하니 좋았다. 요코하마 관람차가 남다르게 보였다. 내가 저것을 타고 맨 꼭대기에 올랐을 때, 그때 같이 탔던 미대생이 떠오르기도 했다.
산이와 강이, 그리고 와이프에게는 정말 비밀이 될 수 있을까.
그 비밀을 잘 지켜주고 싶다. 나이 먹고 흰머리가 산발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늘고 앳된 젊음을 그리워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나는 위로해 주고 싶다. 지금은 수술도 해서 술도 마시지 못하는데 거기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아쯔깡' 한 잔 쭉 마시고 싶다. 지나버린 것들, 그리고 지날 것들을 위해.
산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저런 말 아니었을까.
"나는 그 아이가 사내답지 못하다고 혼냈었는데, 지 엄마를 닮아서 다정했던 거야."
"아가씨는 참 좋은 사람이야."
"아가씨가 쇼지 옆에 있어준다면 내가 안심하고 죽을 수도 있겠어."
"엄마가 그랬어요."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그러니까 내가 노리코를 정말 아낀다면 아버지한테 제대로 노리코를 소개해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어."
막내 쇼지가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는 장면이다.
결국 대화를 살리느냐 마느냐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귀결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서 살고 있으며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들은 어느 허공에서 나를 지켜볼까.
바다 내음 물씬하는 요코하마에 가서 카망베르 치즈를 구워서 색이 좋은 와인 한 잔, 내 나이 예순에는 그렇게 젊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