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것을 알 만큼 확실히 깨어나고 있었다.
식기 전에 마시고 싶은 커피였었나 보다, 어제 본 영화, 그리고 문장 하나가 파도소리처럼 흔들렸다.
내 일상은 파도였구나, 파도가 끌고 가서 묻고 다시 끌고 와서 풀어놓는 거품, 두려움, 파란, 짙은 안식 같은 것들이었구나. 막 잠에서 그러니까 파도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내게 쥐어준 말을 적는다.
가난하지만 부자로 사는 이가 있으며 부자이면서 가난한 이가 있다.
さいはてにて~やさしい香りと待ちながら。
The Furthest End Awaits.
어제 계룡산에 올라서 남매탑을 보고 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그렇게 시작하던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의 수필이 봄볕 아래 가을 낙엽처럼 반짝였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오래전 선생이 걸었던 그 겨울을 나도 걸었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남매탑 주변을 비추는 음력 섣달 그믐날의 오후 햇살을 오래 받아먹었다.
일본어, 야사시이 그리고 그 뒤에 붙은 카오리. 나는 이 말을 우리말로 받아 쓸 수가 없다. 다정한 향기, 과연 그것은 향기로운가, 아니면 다정한가. 사람이 사람에게서 배우고 익힌다. 시대로 이어지고 이어져서 완성되어 가는 것들, 그것은 민족보다 강했으면 한다. 일본 영화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영화는 좋은 것들이 많다.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인 것이 파도나 바람처럼 묵직하지 않더라도 한순간 근사하다. 근사하다. 가깝다, 정말 가까운 풍경이다. 우리가 원하는.
내가 사는 현실에서도 눈이 내린다. 백설이 분분하니 가득한 하늘을 가로질러 성당에 다녀왔다. 그래, 남매탑을 보러 가는 길에 동학사가 꽃처럼 기다리고 있더라면 새해 첫날 아침, 나는 어제 본 영화 감상을 쓰다만 채로 옷을 챙겨 입고 미사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꽃 같은 사람들에게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아무래도 지금 가장 어울리는 일인 듯싶었다. 우리 넷이 둘러앉아 봤던 그 영화, 바다가 배경이었던 '세상 끝에서 커피 한 잔'을 나는 익산 송학동 성당 안으로 이끌어 들어갔다. 파도가 되어보는 새해 아침, 좋기도 한. 좋아지기로 하는.
작정을 하고 - 그런 것을 만발의 준비라고 하면 좋을까. - 회심작 會心作이 만든 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나에게도 투표권 하나를 준다면 나는 너를 모방하고 줄곧 따라다니고 싶다. 오래전 오타루의 눈 쌓인 벌판에서 외쳤던 잘 있느냐는 인사가 세상을 돌고 돌아 파도를 타고 파도가 되어 늘 철썩이고 있었구나. 나는 그 바다로 이제 향한다. 발을 딛고 싶어졌다. 불을 밝히는 저 기다림, 여자가 딸이, 또는 남매탑의 여인이 그렇다, 세상은 여자가 기다린다. 눈이 흩날리기를 기다리고 그치기를 몇 번인가 세다가 다 잊고 여자는 비구니가 그렇지, 머리카락을 다 숨기고 수녀가, 아무래도 좋을 향기가 된다. 그러다가 기단부터 촘촘히 먹어가는 무량한 하루들, 씩씩한 날들이 삼불봉 봉우리 앞에 홀연히 수신 공양으로 또 봄이 올 것이다. 땅이 풀리고 스님들은 덮고 잔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개켜놓을 것이다. 누가 왔다 갔는지 쑥국새 한 마리가 긴 울음으로 오늘이 그날일 거라며 산을 오르는 심사를 돕는다. 나, 어쩌다가 이제야 너를 보러 왔구나.
우연이 치밀한 것에 샘이 난다.
커피를 볶는 저 여인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4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고 아버지를 버린 것은 어린 자기였으며, 그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가서 8년 전 행방불명이 됐다.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기로 하는 빛을 그녀는 따라간다. 허름하고 망가진 배 창고를 '요타카 카페'로 이름 짓고 그녀는 음악을 연주한다. 삶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 나는 그것을 안다. '천사 天使'
그녀가 바닷가 해변에 닿기 전에 거기는 어두웠다.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는 일, 그녀가 했던 일, 그녀가 하는 일은 그렇게 불을 밝히는 것이었다. 바다에, 파도에, 그리고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신파라고 우쭐거리며 피식거려도 이 말은 하고 싶었다. 어쩌면 꿈을 꾸면서도 꼭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을 놓지 않았던 어젯밤은 이 문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사가 사는 곳이 천국이다.'
그러니 하늘나라가 저기가 아니 듯 여기도 아니다. 그녀가 있는 곳이다. 천사가 머무는 곳.
모든 말이 인용구 안에 모여들 만큼 반질반질했다.
그 말들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들리게 했다. 나도 거기에서 그녀와 함께 기다리고 싶었다. 내가 기다리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기다리는 그를, 파도가 삼켜버린 그녀의 아빠를, 4살 아이가 기억하는 돌탑 같은 소원을 내내.
미사키, 너를 한 번만 여기 데리고 와서 남매탑을 돌보고 싶다.
네가 품는 파도를 충청도 계룡산에 부어놓고 탄자니아 커피를 내려달라고 말하는 나는 그 옛날 목안에 사람 뼈가 걸려서 어흥대던 호랑이 아니었던가. 내가 잡아먹은 사람들에게, 커피맛을 살아생전 맛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절망 속에 세상 끝으로 자꾸만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그대의 작품, 커피 한 잔 따라주었으면, 그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