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순례 / 이문재

시의,

by 강물처럼

도보순례 / 이문재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 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 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돌아가 본 적 없다고 흐느끼는 사람을 앞에 두고 보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어두워져 본 적 없이 어둠을 두려워하기만 했다.

사람을 마음이 아닌 입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잊고 까맣게 잊고 나 혼자 앞질러 갔다.

같이 가야 빨리 가고 멀리 가는 것을 아직도 모르면서 사는 것 같다.

가치를 모르면 같이 머물러주지 않을 것인데 언제쯤이나 나는 같이의 가치를 알게 될까.

워낙 둔鈍하다 보니까,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셨다.

나는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살기 위해 일할 거라고 애써 나서지 않아도 된다.

아픈 몸은 저절로 살기 위해 몸무림 친다.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나는 일하는 생각보다 너를 더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고 글을 생각한다.

내게는 그것이 보험이고 연금이다.

좋다, 아프니까 홀가분하고 단순해서 좋다.

시詩 하나만 생각하고 사니까 사는 것 같다.

능력 없는 나를 이제야 수고했다고 다독인다.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고마웠다고 노래도 불러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거나 수고롭게 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한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줄 아는 것이 지혜라면

다른 이의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될 줄 아는 것은 자비다.

밤이 되면 여든 넘은 비구니 스님이 방장산을 혼자서 지킨다.

할머니 스님이 지키는 산에는 언제나 별이 뜬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환하게 비추는 별.

할머니 스님 안부를 내게 알려주는 그 별을 향해 빈손이나마 합장을 올린다.

어두워져서 잘 보이는 어둠이 총총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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