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시력이 약해지고 사물의 초점이 흔들리는데 책 읽는 재미가 늘었습니다.
이래서는 균형을 잃고 말 것입니다.
하긴 하나는 잃어도 다른 하나는 또 챙기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외로운 심사만은 아닙니다.
젊어서 글을 읽지 않았으니 더 힘들게 읽어야 하는 것은 순전히 내 탓입니다.
다만 탓이라고 여기면 처량하니까 그것도 인연 아니겠느냐는 말로 눈감아 줍니다.
품에 달려든 짐승 새끼는 해하지 않을 거라는 연한 기대감이라고 하면 더 어울릴까요.
더 이상 다른 데 내 몸을 쓰지 않을 테니 가긍히 여겨 나를 좀 봐주었으면 합니다.
수필이 가벼운 글인 줄만 알고 건성이었습니다.
피천득이나 이양하 그런 사람들 몇이면 되지, 그 밖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무식한 자가 건방졌고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보이는 것만 믿었던 것입니다.
온전할 리 없는 허튼 구조물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합니다.
소설을 좋아했다기보다 그 이름들에 사로잡혀 꿈을 꾼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이름들이 거기 있습니까.
어디에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내 안에 깡그리 모아다 놓았나 싶습니다.
소설이 미리 날짜를 잡고 품목을 챙겨서 잘 차려 입고 나서는 잔칫집 나들이라면 수필은 그런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왔는데 겨우 거기냐, 아무렇게나 왔는데 벌써 여기야?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살았을 뿐인데 그것이 글이 되고 소감이 되어 주렁주렁 달리는 밤.
환한 대낮에 높다랗게 우뚝 선 저것이 소설이라면 캄캄한 하늘이 하나씩 박히는 저것들이 수필 아닌가 싶습니다.
김용준의 근원수필을 앞에 놓고 눈을 감아봅니다.
여태껏 딴 데를 돌아다닌 꼴이 조금 낯부끄러운 생각도 드는 것이 정말이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선부고독 善夫孤獨´ - 근원은 자기 수필집에 자화상을 그리고 이런 화제 畵題를 붙였는데, 그의 정신세계를 나타낸 솔직한 표현인 것만 같아서 마음 아팠다.
책 앞에 쓰여있는 글귀가 또 사람을 흔듭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 마르코9:2
그때는 그때대로 내 눈이 바빴을 것입니다. 눈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눈은 여전히 나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직 내 눈에 빛이 머물 때 나는 밝아질 수 있을까 싶습니다.
터무니없는 것들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들 - 누군가는 행복이라고 부르는 - 을 펼쳐 보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천천히 읽어가면 됩니다.
짧아진 시력이 사람을 만족시킵니다.
좋은 시력을 갖고서 세월만 보낸 듯하여 괜스레 무안해지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