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75

아침에,

by 강물처럼

어제 말씀드린 아인슈타인의 말 아직 잊지 않으셨지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과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삶.


정도의 차이만 있지, 사실 그의 통찰은 우리를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고 놔뒀던 말이어서 그런지 ´꿰뚫다´ 반가운 만큼 손끝에서 살짝 어색하게 굽니다.


사람들은 ´뚫어´ 그러면 막힌 하수구나 변기, 아니면 콜레스테롤이 쌓인 혈관을 떠올리고, ´꿰뚫다´ 그러면 용하다는 점쟁이가 생각날 것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마태오 16:18




용하기로 치면 시공간을 관통해서 흐르는 역사야말로 그렇고 그 역사의 안감이 되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정신은 더 말할 것 없으며 그러고도 세상에 남아 태어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전해지는 말씀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2천 년 전에 카이사르가 외쳤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 그런 말이 용하고 용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Render un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 ´ s 예수님의 이 말씀은 또 얼마나 통쾌하며 우리를 꿰뚫어 본 말씀입니까.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묻습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묻습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질문은 애정의 깊이까지 나타내는 뜨거운 말이며 차가운 말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 마태오 22:15-22




정치는 정치다워야 하고 종교는 종교여야 한다는 그 한마디 말씀은 내내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은 걷는 일이 고맙고 신기합니다. 그것만 할 수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에게는 앉아 있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목 디스크가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불편한지요. 눕지 않는 한 목은 항상 바르게 서있어야 합니다.


어제 아침 아인슈타인의 그 말을 꺼내 적고 샤워를 하며 알았습니다.


내가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기도 덕분이었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어디냐를 바꿔 말하면 이게 다 기적 아니겠냐입니다.


3월 8일이면 이런 식의 편지를 쓴 지 4년이 됩니다.


처음부터 편지였던 것은 아닙니다.


2년쯤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그것은 병상 일기 같은 것이었으며 독백이었고 가끔 나보다 훨씬 많이 아픈 이를 위한 처방으로 적어본 말들이었습니다. 한때는 그것으로 책을 엮을 생각도 했었습니다.




어제 마지막 엔디의 말도 기억하시는지요?




"그딴 것은 모르겠다. 단지 과거를 돌아보면 어리석은 젊은이가 보이고 그에게 옳은 길을 가르쳐주고 싶지만 그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늙은이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가석방을 위해서 수없이 ´바른 자세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가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면접관들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하게 말합니다. 虛心坦懷 허심탄회는 마음을 비우고 속에 품은 것들이 평평하다는 뜻입니다.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평평해지는 것, 저 탄 坦이라는 글자를 갖는 데 세월이 들었습니다. 값비싼 세월을 들여 겨우 손바닥만큼 샀습니다.


책이 안달해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처럼 부끄러운 일도 없었겠다는 생각에 화끈거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편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더 든든해졌습니다. 더 글이 쓰고 싶어졌고 편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이 좋아집니다.


탄식 嘆息 할 줄만 알았던 숨이 고르게 퍼지면서 편안해집니다. 기적이니까요.




외딴곳이란 말을 고유명사처럼 사용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거기에 시선이 따라갑니다. 내 주의가 거기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기적 같습니다.




아침밥이 지어질 것입니다.


곱게 따뜻한 것이 겨울 아침에 정겨울 것입니다.


이 편지가 거기에 닿으면 저도 좋고 선생님도 좋으셨으면 합니다.


기적이 기적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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