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76

아침에,

by 강물처럼

"그냥 사이가 안 좋아요."

초등학교 여자아이 둘이서 말하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가만 보고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투기 시작합니다.


저러다가 성격 나빠지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벌써 분위기가 냉랭하다 싶어서 싸웠냐고 물으면 엘리베이터에서 싸웠다고 그럽니다.


여기까지 잘 왔다가 거기에서 싸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나 같으면 저런 마음이 들지 않을 텐데, 두 아이는 또 시시덕거립니다.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대에 집중합니다.


그 사이에 저절로 히히대며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면 보는 사람이 안심이 됩니다.




이런 것을 보고 내구성이라고 할까, 보완성이라고 할까.


생각보다 사람은 튼튼하게 생겼으며 무엇에든 견디어 내는 그 탄력; 회복력에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책이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사람의 머리와 심장만으로 성공하고 완성되었을까.


고대 로마의 국가 건설 시리즈를 들여다보면서 현재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는 여러 도시 정책들의 난잡함이랄까, 마치 천 년이나 갈 것처럼 기고만장하게 떠드는 번잡함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잘 느껴졌습니다.


전문가 집단이나 집단지성과 같은 형식으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무엇인가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는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인위가 그르치는 시장을 보는 것 같고 사람이 훼손하는 자연을 목격하는 기분입니다.


적어도 단계적이라는 그런 안정감이 사람들이 펼치는 과학이라든지 진보, 계획에는 결여되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중학교 3학년 영어 시험지와 고등학교 1학년 모의고사는 단계를 훌쩍 건너뜁니다.


성실하게 한 계단씩 올라온 아이들만 낭패를 경험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멀쩡한 아이들이 수학 포기자, 영어 포기자에 등록됩니다.




여자아이들이 사소한 것들로 다투면 심란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다.


그러니 내가 중재하러 나서는 것은 무례하다. 다만 불이 나면 그 불을 끄는 데 협조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정이라는 심오한 것이 쌓여가고 있는 줄도 모른다. 내 판단은 그렇게 완벽하지 못하다.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들 투성이라서 세월을 어떻게 그렇게 무심히 살아올 수 있었을까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정말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습니다.




"오늘 날씨가 제법 춥네요."


"아, 겨울이니까 춥지, 덥겠어?"




돌이켜 보면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대화할 줄 모른다는 것은 살아갈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계를 무작정 건너뛰는 경솔함과 조급함, 잘난 체하며 동경하는 구름 위의 만찬. 그것들만 보이는 구조, 그것을 위해서 치열하게 달리는 폭주와 질주. 그리고 신호 위반과 반칙들.




"그냥 사이가 안 좋아요."




그 말은 어떤 신호일까, 아이들만 그러는 걸까.


과연 언제까지 회복력은 회복을 거듭할 수 있으며 내가 이러고 앉아있는 것은 그야말로 인위적 처사가 아닐까.


내가 곧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러시아가 손에 들고 있는 전쟁은 무엇을 그 안에 담고 있으며 우리의 대통령은 무엇을 바라는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인가.


지렁이는 달팽이의 속도를 갑갑해할까, 나는 누구를 탐하고 부러워하느라 애쓰는가.


사소한 생각들이 꼬리를 잇습니다.


내 삶과 나는 그냥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 말, 가능할까.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마르코 9:39




내 시간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 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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