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영화의,

by 강물처럼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책이나 영화, 가게 이름으로 문장을 떠올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섬 같은 사람이다.

섬은 왜 그리울까, 누구 말대로 곁에 있어도 보고 싶은 존재감은 거부하지 못한다. 한 글자이면서 문장, 한 권의 책이 다 되어 버리는 섬에 비가 내리는 날을 상상한다. 기적처럼 방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꽃이 피기로 하는 약속을 어두운 새벽에 뿌리는 앙큼한 너를 어쩌면 좋냐. 세상에 내리는 비는 섬이다. 내가 섬이었다는 꿈을 바다가 들려준다. 비가 문장을 이루고 긴 파도를 펼쳐 보이면 나는 배, 배였다가 출렁이다가 또박또박 적어내는 봄. 한 글자로 쓰는 영화, さよならの朝に約束の花をかざろう。 Maquia : When the Promsed Flower Blooms.



꽃이 피기로 한 계절에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곳이 있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만삭의 임신부들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피신하고 있다. 부서진 인큐베이터와 피가 흥건한 침대가 보였다고 CNN은 전한다. 힘껏 부푼 배로 계단을 내려오던 그녀 옆에 아기가 자고 있다. 그 사이 생명이 태어났다. 조작된 사진이라고 떠들던 러시아는 이 창피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엄마는 나무와 같이 든든하구나. 꽃을 피워낸다. 아기를 낳으면서 한 번 엄마가 되고,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또 한 번 엄마가 되는 존재다. 섬 같은, 바다가 아름다운 대상으로 남아있는 까닭은 거기 섬이 있으니까. 모성 母性은 바다 깊은 곳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아틀란티스의 기억, 그 힘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을 다 살아간다. 젖 먹던 힘, 나의 의지가 되고 숨이 되고 바람이 되는 엄마라는 이름. 그리운 섬.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일본 사람 오카다 마리는 한국 사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배웠을까. 그녀의 스크린에는 이별을 감내하는 전설의 종족 '요르프'가 산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고 수백 년을 살아가는 여자들, '이별의 혈족'들. 그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히비오르엔' 우리가 설레는 말, 날실과 씨실로 그녀들은 히비오르엔을 짓는다.



내 감동이 너에게 새벽 빗소리로 전해진다면, 올해는 벚꽃이 유난히 눈부실 것이다. 너의 문장들이 날실과 씨실로 한 폭의 히비오르엔이 되어 읽힌다. 사이타마의 저녁 놀이 나를 살렸었구나. 서른 살이었던 나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 얼마나 상심했던가. 차라리 아기가 있었으면 하고. 내가 엄마가 되어 키워도 좋을 것만 같았다. 어떡하든 그때를 버텨낼 방법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지 않았다. 상실 喪失은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 나는 나의 상실을 원했다. 높은 데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슬픈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서서히 희미해지는 그래서 소실되는 벌을 받고 싶었다.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은 늘 그 대상이 되어준다. 넓고 깊으니까, 영원히 날아가는 공간 - 스페이스. 그리고 내가 섬이 되는 곳.


마키아는 요르프지만 인간의 아기를 키운다.

엄마라는 이름은 젖먹이 갓난아기의 면역력이 되고 다 자란 자식의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아리엘'과 마키아는 하나가 되어 '엄마'라는 이름을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

13살 먹은 딸, 강이가 쉰 살이 넘은 엄마 발을 베고 누워 영화를 봤다. 보면서 훌쩍거리는 것이 다 들렸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빗소리처럼 훌쩍임이 그랬다. 비가 요란해졌다.

영화는 끝났고 나는 긴 제목을 다시 적는다.



짧게 소설 흉내를 내서 쓴 글에 '히비오르엔'을 입히면 어떨까 생각한다.

거기 나오는 아빠 캐릭터는 여태 한마디 말이 없다. 말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그렸는데 그에게도 마음을 전달할 어떤 것을 찾아주고 있던 참이다. 눈빛은 점잖아도 자주 쓸 수 없다. 그것은 신화나 전설 같은 분위기를 급격하게 형성하니까 문장이 표현되는 - 악보처럼 연주되거나, 풍경처럼 읽히는 - 사람 냄새가 나는 장치가 필요하다.

동시에 주의를 나에게로 환기시킨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표현하는가, 내가 지키는 것들은 잘 있는지.


일요일, 우연처럼 비가 내리고 꽃이 피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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