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언어는 사실을 좇고 작가의 언어는 상상을 펼칩니다.
그렇다고 둘이 아예 다른 것은 아닙니다.
둘 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필요로 합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도 한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는 일도 모두 철학적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정치야말로 순도 높은 철학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를 아울러야 하며 인종은 물론 수많은 계층을 이끌어야 할 솜씨가 요구되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 말이 둘러싸고 있는 사상이나 가치관은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됩니다.
21세기는 철학하지 않는 풍요로움으로 해로운 것도 많은 시대인 듯합니다.
종교가 살찌면 어떻게 탁발을 하러 나가겠습니까.
정치가 자기 입맛대로 술수를 부리면 그것을 정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지 無知 하고 막지 莫知 한 것이 파워의 속성입니다. 게걸스럽게 주변의 것들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립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면 자기 분열을 하고 그것을 다시 주워 먹을 것입니다.
힘은 살려는 의지가 되고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이 되기도 하지만 핸들을 놓치는 순간 우악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밥 먹는 힘만 있어도 좋을 때가 있습니다.
책 볼 힘만 있어도 좋겠다고 하소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파워를 다룰 줄 모르면서 파워 게임을 즐기는 조금 이상한 종족입니다.
그러다가 산불이 나고 전쟁이 나고 사람들이 희생됩니다.
함부로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에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원인도 모르는 바이러스로 온 세상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강제 학습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철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열이 나고 힘들어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전쟁까지 터뜨렸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정치라고, 그것도 권력이라고 마음껏 휘두릅니다.
처음에는 종교를 비웃다가 다음에는 철학을 다 무시하게 되는 것이 과정입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이 흐트러지고 행동이 거칠어감에 따라 생각이 오염됩니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이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람이 추락합니다. 둥지가 되고 기둥이 되어줄 그래서 믿음이 가는 그것 하나가 없습니다.
힘만 믿었으니까요.
힘으로 다 될 줄 알았을 테니까요.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오 5:45-46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일은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내가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철학이 됩니다.
사랑은 철학을 이루는 토대가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따뜻한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 같은 거 아닐까 싶습니다.
원리는 진리이며 섭리입니다. 그것이 현상입니다. 그렇게 해서 철학이 됩니다. 철학은 다시 믿음이 됩니다. 그 믿음은 사랑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들이를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