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92

아침에,

by 강물처럼

Do to others /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Luke 6:31

다른 사람들에게 하라 / 그들이 당신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루카 6:31




한마디를 더 곁들입니다.




AS you sow / so shall you reap.


뿌리는 대로 / 거둘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익숙하게 들리는지요.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표지가 없는 곳에서 길이 나누어지면 혼란스럽습니다. 한 번 경험으로는 노련해질 수 없습니다.


길 없는 길에 섰을 때 표정들이 제각각입니다.


내 표정도 그때마다 달라집니다. 처음, 두 번째, 세 번째, 다 다릅니다.


내 의식과 마음 상태는 내 표정을 읽고 그것이 찾지 못하는 방향을 찾아 주려고 애를 씁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인생에 답이 없고 비밀이 없고 공짜가 없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있지만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것, 온통 그것으로 이루어진 세계.


길은 있습니까? 마음이란 것은 있습니까? 나는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래서 사람이 예술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밥은 먹고 살되 말씀도 듣는 것이 삶인 듯싶습니다.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발은 부지런히 땅을 짚는 그 균형감이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


여유가 있는 만큼 안으로 들여다보고 밖으로 창을 냅니다.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코가 석 자´인 사람 아닐까 싶습니다.


뉘라고 거기에서 그렇게 여유를 부리겠습니까.




1941년 7월 말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수감자가 탈출했습니다.


그 대가로 같은 막사 동료 중 10명이 무작위로 뽑혀 굶어 죽어야 했습니다.


그때 폴란드군 중사 출신 ´가요브니체크´가 외쳤습니다.


"죽기 싫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독일군 장교가 이 장면에서 묻습니다.


"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대답입니다.


"저는 아내도 자식도 없습니다. 저는 사제입니다."




7월 29일에 그 10명이 아사 餓死 감방에 갇힙니다.


2주가 지나는 동안 차례차례 죽어 갔습니다. 콜베 신부는 그들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8월 14일 독일군은 살아남은 4명에게 독극물인 페놀을 주사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길은 너무 쉽습니다.


두 길 모두 있으면서 없으니까요.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 6:37




아마 제가 소설을 쓴다면 이 방향으로 가볼 것 같습니다. 그 뜻은 무엇이었던가, 깊이를 재어보는 모험, 나들이, 만행, 소풍 같은 거 아닐까 싶습니다. 용서받고 싶으니까요. 그래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곳의 새벽이 좋습니다.


새벽이 새벽 같아서 정취가 돋습니다.


눈으로만은 층층 쌓인 어둠을 풀어내지 못합니다. 새벽에는 감각을 돕고 훈련시키는 것들이 유익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렇게 앉아 복음을 전하는 저는 황홀하기도 합니다.


전쟁터로 보내는 소포를 꾸미는 소녀가 되기도 하고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졌다가 거기 나오는 스토리를 적어서 편지를 쓰는 13살이 되기도 합니다. 복음 福音은 기쁜 소식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 구원의 길이니까요.




그런 말, 그런 기도가 여기 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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