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96

아침에,

by 강물처럼

하나의 집단으로 뭉치면 사람들은 힘을 발휘합니다.

집단이 커질수록 그 힘도 거대해져 평소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을 거뜬히 해결합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역시 방향입니다.


집단 지성이란 말은 한 사람으로 불가능했던 일이 다수에 의해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군중 심리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이 전체의 부분이 되었을 때, 특히 익명성이 보장된 경우는 통제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악의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영원한 연구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익명성이란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니 최소한 좋은 쪽으로 힘을 이끌고 싶다면 그게 누구인지 밝히고 시작하는 편이 일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이름 때문에 죽기도 하고 이름으로 거룩해지는 것을 보면 ´이름´은 신비한 물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면서 이름 하나를 얻고 그 이름을 다루는 시험, 마치 애완동물을 키우듯이 내가 길들이며 동시에 내가 길들여지는 삶을 살아보는 일. 나중에는 그 이름이 되거나 그 이름이 되지 못해서 안타깝거나 깨끗이 이름까지 다 지우고 일어서는 시험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라면 과연 이름은 지금처럼 지위와 권세를 누리고 싶어 했을까.


그런 이름, 내가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이름, 푸른 바다에 은파 같은 이름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무리 가운데 일부가 되었을 때 서슴없이 행하게 되는 힘은 과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 집단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 공동체를 실감합니다.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와 같은 교훈을 새기지 않으면 결코 해결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암세포를 이기려면 다른 부분들이 힘을 합쳐 튼튼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천사들의 정성이 모이면 꺼지지 않는 불꽃이 생겨납니다. 무수히 많은 날들과 시간을 함께 지나온 흔적이 우정이 되고 사랑이나 평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그래서 이름 아래를 바치고 서 있는 그 무명 無名들의 이름이 그립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 마태오 21:42




폭격이 멈추지 않자, *성체를 다른 곳에 모시려고 피난 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봤습니다.


길 양편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지나가는 성체를 맞이합니다.


이름 없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가 기도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기꺼이 두 손을 모으게 합니다.


내가 모르는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평안, 그것을 바라는 것이 인류애 아닌가 싶습니다.




6학년 딸아이하고 밥을 먹는데 시금치하고 냉이가 나왔습니다.


지금이 철이라서 둘 다 맛이 올랐습니다.


아이가 냉이보다 시금치가 맛있다며 시금치에만 젓가락이 다녀갑니다.


냉이하고 시금치는 서로 다른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했습니다.


냉이는 냉이의 맛으로 나를 위하고 시금치는 시금치의 맛이 있는 거잖아.


너무 어려웠을 것입니다.


비교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 쉬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라는 아빠가 지금은 불편하기도 할 것입니다.




전쟁, 바이러스, 죽음 그리고 탄생.


마치 소설에나 나올 듯한 봄이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멘




*성체 - 예수님의 몸. 축성된 빵의 형상을 띠고 실제적으로,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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