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16

아침에,

by 강물처럼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는 잊으려야 잊히지 않는 두 마디가 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




예전 최불암 시리즈처럼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어서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고쳐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한다.




옆에서 누가 그러더라도 웃거나 따라서 흉내 낸 적은 없습니다. 갈매기의 꿈을 읽지는 못했어도 저 말은 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높이 나는 새가 아니더라도 빛나는 말 하나쯤 갖고 싶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세계를 선택한다는 말 다음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다음 세계도 이 세계와 같을 것이다. ´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그 정도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는 것, 그래서 감동했던 것들이 때때로 생겨납니다. 그것들은 무수히 많은 그리고 한없이 광활한 시간이나 공간에서 내가 서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온 고기 떼 같은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공간에 걸쳐 있던 ´나´라는 그물에 우연히 걸렸거나, 날아온 꽃잎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요즈음은 세상도 하나의 ´망´이 되었습니다. 네트워크라든지 웹 Web이라는 말도 거미줄을 가리키는 망입니다.




그 뒤로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갈매기는 때때로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TV나 책에 쓰여있는 문장들 사이에서 언뜻 스치곤 했습니다. 반가웠지만 오래 붙들고 소식을 나눌 사이는 되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제 안으로 들어와 옛날 일들을 떠올려주는 일만 합니다. 겉은 귀밑까지 희어진 어떤 사람이 맡았습니다. 그 사람을 저는 ´나´라고 부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토요일 밤, 9시가 넘었는데 산이가 저에게 보여줄 숙제 노트를 들고 쭈뼛거렸습니다.


그렇게라도 미안해하는 구석이 싫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는 아들에게 기대가 높은 듯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은 헛나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휴대폰 가져오고 당분간 사용하지 마.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 들어와 잠을 잤습니다.




일요일 새벽은 더없이 고요합니다.


마침 갈매기의 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리처드 바크가 그 책을 쓰고 타자기를 바다에 던졌다는 한 토막을 듣고, 40년 전 그때 내 그물에 걸렸던 갈매기를 구해볼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것입니다.


그 새벽은 밑줄로 이어졌습니다.


창공을 닮은, 바다와 닮은 파랑 색연필을 찾아 한 줄, 한 줄, 그동안 긋지 못했던 선들을 그었습니다.




아침 일찍 성당에 나와야 할 일이 있어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메모를 한 장 적었습니다.




´산이야, 새벽에 읽었는데 좋은 책이다.


예전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이 지금도 든다.


오늘은 이 책을 한번 읽어봐라.




P.s. 휴대폰은 잘 찾아봐라. 거실 어딘가에 있다.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 12:7-8




정오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거실에 충전 중인 산이 휴대폰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침에 적은 메모지도 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는 일을 하면서 다 보냈습니다.


피곤하다 싶을 때 하루 일과가 끝나고 산이도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손에는 몇 장 남은 갈매기의 꿈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은 사람이 서글서글해집니다.


생각도 꽃처럼 소담스러워집니다.




´꽃구경 가자. ´




일요일 밤에 우리는 벚꽃 구경을 하면서 오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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