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17

아침에,

by 강물처럼

새벽입니다.

닭이 울기 전입니다.


날이 밝으면 모든 것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눈에 빛이 듭니다.


실체는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어둠은 상자.


상자 안에서 나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둠 가운데 어둠이었습니다.




빛을 해석하지 못하면 거기가 어둠입니다.


세상을 상자에 넣고 살면서 ´이런 세상에´ 그러면서 놀라고 한탄합니다.




닭이 울고 있습니다.


닭이 울어도 베드로는 없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떠들던 베드로는 더 이상 없습니다.


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 삼백 번이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베드로는 없습니다.


당황하고 배신하고 괴로워하는 그를 볼 수가 없습니다.




불편한 것들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집니다.


세상은 편의점 같아져서 종교나 예수님이나 베드로도 거기서 구입합니다.


끓는 물만 부으면 금방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인기가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요한 13:21




침묵 대신에 은혜를 비처럼 내려 달라는 요란한 21세기의 베드로들.


나는 나밖에 안 믿는다는, 그래도 잘 먹고 잘 산다는 우리들의 유다 이스카리옷들.


마음이 서로 산란할 것입니다.


함라산 꼭대기에 1년에 한 번 피는 산벚나무가 차라리 보기 좋습니다.


믿음은 마음이 아닌 듯합니다.


머무는 데가 없이 행하는 벚꽃잎이 믿음인 듯싶습니다.


서운한 것도 불합리한 것도 세월도 벚나무는 환하게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가득 꽃이,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한테도 꽃이, 한바탕 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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