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짜리 여행 2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우리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거잖아, 라는 듯이 제각각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짜리 나들이는 이 공식이 통용되는 지점에서 그 무대가 펼쳐진다.

누군가 혼자 준비를 하고 서둘러야 한다면 시간에 출발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자립적이며 독립적이며 단출해야 맛이 난다.

고기를 재고 차 트렁크가 빼곡할 정도로 짐을 싣고서는 절대 가벼울 수가 없다.

나그네에게는 일단사일표음 一簞食一瓢飮이 생명이고 가치며 멋이다.

하룻길에서 우리는 기꺼이 나그네가 되어 구름을 흘려보내고 냇물에 몸을 씻어보기로 하자.

토요일 오전 특별히 성당에 다녀오고 그대로 30분 쉬었다가 동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진안 가는 길이 나오면서 곶감으로 유명한 동상면 골짜기에는 물이 좋다.

지리산 뱀사골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름이면 수많은 인근 사람들이 피서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사람은 믿음대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좋은 자리가 그것도 차에서 가까운 곳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맞았다.

산이와 강이는 벌써 물속에 들어갔다.

튜브가 없어도 둘이서 신나게 자맥질이다.

이런 광경이 여름에는 가장 보기 좋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까르르 웃으며 매미 소리가 찡 울리는 한낮을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싶다.

물끄러미 너희들의 시간을 바라보며 그 추억 속에 내가 서있는 모습도 들여다본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시인이 되겠다고 꿈을 꾸던 청년처럼 나도 슬쩍 푸른색을 돋아낸다.

녹음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하늘이 높다랗게, 높다랗게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아빠는 자주 잠이 오는 사람이잖아.

운전하고 오느라 오전에 쉬지를 못해서 기운이 떨어진 거니까 따로 놀라지 않아도 된다.

엄마도 나이 든 엄마여서 너희에게 괜스레 미안해하는 구석이 많은데 그나마 우리는 선방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루짜리 여행을 떠나왔는지 그것이 모두 지금 너희들 모습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아서 좋다. 고맙기도 하고 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이번 라면은 최악이었다.

어지간하면 밖에서 끓이는 라면은 맛있기 마련인데 내가 너무 함부로 대했다.

2시부터 5시까지 물속에서만 놀았는데 기껏 먹은 거라고는 라면 한 사발 하고 햇반 두 개, 복숭아였구나.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없었을 거야.

삼겹살은 집에 와서 먹으니까 서로들 편하고 좋았잖아.

아빠는 늘 그것이 맞겠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일어설 줄 아는 엉덩이가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다고.

책을 읽을 때에는 진득한 엉덩이가 어울리고, 영화 볼 때는 흔들면서 보는 엉덩이가 더 재미있고 말이지.

장마가 길었다는 것을 너희는 다 잊을 거야.

우리가 다녀온 모든 하룻길을 다 잊고 너희는 하나의 무늬로 바라볼 것이다.

배경음으로 매미 소리가 진하게 울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날들, 째깍째깍 새겨지는 분초의 기억들이 세포처럼 너희가 바라보는 무늬를 구성하겠지.

나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 그림 속에 그려질 하나의 오브제로써 충분히 행복하다.

이제 서쪽으로 출발.

일요일 저녁에는 사촌 동생 하루가 엄마, 아빠와 함께 찾아온다.

다음 월요일이 벌써 기대된다.

너희가 많이 어렸을 때 하루씩 보내던 서해 소나무 숲을 보러 가기로 했다.

거기에 가면 강이가 아직 걸음마를 다 떼지 못하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까불거리며 파도가 일 때마다 도망치다 도망치다 엄마한테 안기던 산이는 또 얼마나 예뻤겠냐.

웃음소리를 들으러, 새로 웃음 지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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