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약 / 나태주

시의,

by 강물처럼

좋은 약 / 나태주


큰 병 얻어 중환자실에 널브러져 있을 때

아버지 절룩거리는 두 다리로 지팡이 짚고

어렵사리 면회 오시어

한 말씀, 하시었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네 독한 마음으로 부디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아버지 말씀이 약이 되었다

두 번째 말씀이 더욱

좋은 약이 되었다.



동생이 아들을 낳았다.

일주일 지났다.

세상에 태어났더니 온통 더워서 난리법석이더라고 아이가 삼신할머니에게 푸념이라도 할 듯하다.

괜스레 미안하다.

이렇게 더울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고 말해주고 싶다.

꼬물꼬물 여물지도 않은 입으로 엄마 젖을 연신 빨고 있는 아이가 그려진다.

혹시라도 목마름을 먼저 배워버린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는 이렇듯 달콤한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든지 엄마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다든지 말이 많을 것 같다.

덥기만 할 것 같아도 징글징글하도록 재미있는 곳에 찾아온 걸 환영한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살고 있다.

더운 날에도 아이를 돌볼 줄 알고 추운 날에도 아이는 태어난다.

알뜰하게 살필 줄 알고 보듬을 줄 알아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너와 함께 재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한여름 무더운 것이 못 쫓아오게 부지런히 기어서 세상에 온 아기야,

한달음에 성큼성큼 여기까지 잘 찾아온 아기야,

'세상은 큼지막한 공이다. 우리 신나게 뻥뻥 차면서 즐겨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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