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속도 / 정태호

시의,

by 강물처럼

식물의 속도 / 정태호

키가 작은 식물을 재촉하지 말라

그는 바람이 부는 속도대로 자란다

초록이란 초록은 모두 머금고

벌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느림을 숙명처럼 연주하고 있다

한때 그늘이 좁았던 나무도

천 년이 지나면 거목이 되듯이

나무를 통과한 시간은

또다시 바람으로 불어온다

느림의 선율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자라는 어떤 것은

느리게 내버려 두어라

그것의 소리가 여름보다 아름답다


친구 수덕이가 키가 작은 것이 눈에 하나도 거슬리지 않더니,

아들 산이 키가 작으니까 자꾸 그쪽으로 신경이 쓰인다.

40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수덕이가 커 보인다.

중학교 1학년에 간 아들이 또래보다 작다.

반에서 키가 몇 번째나 가는지 걱정이 되었다.

따로 속상하거나 기분 나쁜 것은 아닌데 꼭 남들 먹는 밥을 다 못 먹인 기분이다.

수덕이 키가 커 보인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의,

친구의 아버지가 수덕이랑 우리가 어울려 다닐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것도 알 것 같아서 돌아가신 수덕이 아버지께 술 한 잔 따라 드리고 싶어 진다.

산이 친구 중에 누구라도 먼 훗날 나한테 그런 마음 드는 날 있을까.

나는 이 시를 산이 육아일기에 써놓으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쓰기 시작한 일기를 중학생이 되어서도 쓰고 있다.

육아일기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맞는 이름이라서 계속 육아일기라며 쓰고 있다.

그야말로 성장일기가 된다.

나는 한 번도 산이 키가 몇에서 몇이 됐다는 말을 적어본 적이 없다.

그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산이는 벌써 내게는 큰 존재였으니까.

내가 너의 성장을 계속 기록하는 것은 단지 키를 키워보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자라는 너를 지켜보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가 쓰는 육아일기에는 내가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이 사철 내내 보기 좋아서 나는 늘 꽃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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