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31

아침에,

by 강물처럼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國語)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어느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알겠다는 분도 계시고 낯설다는 분도 희미하다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희미한´


하나 힌트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희미한´




아무래도 밥 먹는 식탁에 메모할 준비를 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묻는 말에 대충 대답은 하는데 테이블을 치우고 나면 금방 다 잊고 맙니다.


지금도 무슨 이야기였더라, 한참 생각했습니다.




"아빠, 밥을 먹긴 해야겠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나는 거야, 그럴 때는 어떡해야 해?"




"네가 컸구나, 컸다는 거야, 강이야."




"왜, 그게 큰 거야?"




"생각이 불쑥 찾아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생각 때문에 자기 동작을 잊는 거, 그거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할 줄 알거든."




의외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질문이지만 내 말이 싫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누구나 크고 싶어 합니다. 지금 잠시 혼란스럽더라도 사람이 자라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감내할 줄 압니다. 얼굴에 나기 시작한 여드름을 다스리듯이 말입니다.




¶이 바닷가에서 보낸 1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빠도 멈출 때가 많았어."




"마지막 지하철을 서서 그냥 보낸 적도 있었어, 그날 시나가와 品川역에는 비가 내렸고 새벽 첫차가 올 때까지 쓸쓸했던 거 같아."




´쓸쓸했어´라고 나올 뻔한 것을 ´했던 거 같아´로 바꿨다. 겨우 13살이니까.




"한 번에 두 가지 것을 잘하면 Extrovert라고 그러더라, 외향적인 사람. 아빠 같은 사람은 Introvert, 안으로 ´돌리는´ 그런 유형. 가끔 정말 내가 내향적일까, 생각할 때도 있는데, 대충 맞아."




나는 한 번에 두 가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시도할 수 있을 때 늘 시도하는 것을 보면 ´중성적´이다. 내 경계는 희미하다. 안갯속처럼. 안갯속같이 아이를 골탕 먹인다. 밥은 어디로 갔다.




"광고한다고 영어로 뭐라고 그래, ad´vert´ise. 그러잖아? 거기 vert, 그것이 바로 저 vert야. 사람들한테 세상에 막 돌리는 거야."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이것의 쓸모는 지금 모른다. 적어도 열세 살짜리가 스물이 되고 그 뒤로도 한참 더 지나서 어느 날, 어느 길가에서 민들레처럼 내가 생각날 때 그때 발화할 수도 있다. 홀씨처럼 비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내 호흡도 가라앉히고 씹던 밥알도 내버려 두고 너를 응시한다. 너는 무슨 생각에 골똘하냐.




"이왕이면 두 가지를 차분하게 중재하는 편이 우선은 좋긴 한데, 그러려면 정말 좋은 중재자가 필요해. 여기에서 ´좋은´이란 말이 중요하다. 좋다는 것은 착하다가 아니고 어느 쪽에서든 공평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거야. 너는 네 생각들의 중재가 되어야 해."




"그러려고 멈춘 거야.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밥이 기다리고 있든지, 버스가 출발하려고 그럴 거거든.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아빠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몰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 3:17




다들 그랬다. 다들 멋쩍어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자기 나라말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차라리 장난처럼 보였다. 한국 학생이 ´워아이니´ 그럴 때는 연극처럼 보기 좋았고, 중국 학생이 ´아이시테루´ 그러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일본 학생이 말하던 ´사랑해´라는 말, 귀여웠다.




자, 이쯤에서 소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즐거우셨는지요, 새벽안개가 짙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걷혔습니다.


무작정 건강하십시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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