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30

아침에,

by 강물처럼

4월이 막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무렵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는 마침 꽃이 달리기 시작했던 터라 미간이 찌푸려졌습니다. 날이 밝으면 벚나무 아래 산산이 쏟아진 꽃잎을 제일 먼저 목격할 것이 싫었습니다. 꽃이 피어야 하는데, 꽃 보러 가야 하는데. 새벽 비가 내리는 속에서 나무를, 나무의 수태 受胎를 걱정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 4월이 다 가기 전에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나무 : 식물 중 가장 강한 존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57p.

어제 책을 덮으면서 전율이 일던 그 문장들은 다른 날 아침에 소개하겠습니다.


요즈음 그네를 하나 흥겹게 타고 노는 것 같습니다. 4월에는 비가 내리더니 4월에도 비가 내립니다. 한 달 동안 꽃구경도 잘하고 세상에 색이 하나 더 생겨날 때마다 흥이 났습니다. 분홍, 노랑, 초록, 흰 , 색을 키우는 비를 경험했던 올해 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봄이고 사월은 그렇게 문을 닫으려나 봅니다. 이 비가 그치면 고마웠던 날들이 - 올해처럼 꽃이 만발하다니요. - 퇴장합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요한 3:7-8




빗소리를 들으면서 종교를 하나 예쁘게 담고 있는 시를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돈 되는 것은 눈곱만치도 건네지 않더니 전라도 식으로 쓰잘데없이 시 나부랭이나 가지고 다니는 풍신, 어쩌면 그것이 신앙 같은 거 아닐까.


길 없는 길이라든지 길 위의 길을 가야 하는 우리는 너그럽기로 합니다. 그거 하나로 다 풀어가기로 합니다.


해서 눈치 없이 길게 적습니다.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오늘도 거기 있어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연못이 있어서


구름은 높은 만큼 깊이 비치고, 바람은 부는 만큼만 잔물결 일으키고, 넘치는 만큼만 흘러넘치는, 고요하고 깊은 오래된 물의 결가부좌가 오늘 같은 열 엿샛날 신새벽에도 눈뜨고 있느냐




눈뜨고 있어서, 보름달 이우는 이 신새벽


누가 소리 없이 뗏목을 밀지 않느냐, 뗏목에 엎드려 연꽃 사이로 나아가지 않느냐, 연못의 중심으로 스며들지 않느냐, 수천수만의 연꽃들이 몸 여는 소리 들으려, 제 온몸을 넓은 귀로 만드는 사내, 거기 없느냐




어둠이 물의 정소리에서 떠나는 소리


달빛이 뒤돌아서는 소리, 이슬이 연꽃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이슬이 연잎에서 둥글게 말리는 소리, 연잎이 이슬방울을 버리는 소리, 연근이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 잉어가 부레를 크게 하는 소리, 진흙이 뿌리를 받아들이는 소리, 조금 더워진 물이 수면 쪽으로 올라가는 소리, 뱀장어 꼬리가 연의 뿌리들을 건드리는 소리, 연꽃이 제 머리를 동쪽으로 내미는 소리,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소리, 물잠자리가 제 날개가 있는지 알아보려 한 번 날개를 접어보는 소리....




소리, 모든 소리들은 자욱한 비린 물 냄새 속으로 신새벽 희박한 빛 속으로, 신새벽 바닥까지 내려간 기온 속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제 길을 내고 있으리니, 사방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니




어서 연못으로 나가 보아라


연못 한가운데 뗏목 하나 보이느냐, 뗏목 한가운데 거기 한 남자가 엎드렸던 하얀 마른 자리 보이느냐, 남자가 벗어놓고 간 눈썹이 보이느냐, 연잎보다 커다란 귀가 보이느냐, 연꽃의 지문, 연꽃의 입술 자국이 보이느냐, 연꽃의 단 냄새가 바람 끝에 실리느냐




고개를 들어 보라


이런 날 새벽이면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거늘, 서쪽에는 핏기 없는 보름달이 지고, 동쪽에는 시뻘건 해가 떠오르거늘, 이렇게 하루가 오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오고, 모든 한살이들이 오고 가는 것이거늘, 거기, 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결가부좌 트는 것이 보이느냐






가슴이 벅찬 일입니다.


비 오는 날에 더 예쁜 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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