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짜리 여행 4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평소에 혼자서 시간을 보낸 적 없던 사람들은 지금처럼 집밖에 나서는 것이 조심스러운 시기가 힘들겠구나.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겼던 사람들한테는 심심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만큼 힘든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태풍이 한차례 몰아쳤다.

거센 바람탓에 밤잠을 설쳤던 것이 엊그제였다.

그때 방송에서 섬진강을 비춰줬다.

정확하게는 섬진강이 범람해서 섬처럼 변한 마을들을 보여줬다.

점점이 박힌 집과 그 집들의 지붕들과 거기로 피해간 소들도.



내 몸의 통증도 반복되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고 슬픔이 학습되면 눈물에서 짠기가 빠진 것을 울면서 안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힘이 되는 것들 - 샘물, 맑은 공기,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읽어내는 또 하나의 마음, 공감 共感 - 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질 것 같다.

쯧쯧거리면서 혀를 찼지만 TV 화면이나 나 자신이나 딱딱하고 차가운 유리로 만들어진 조직을 갖고 있어서 슬픔이나 격정, 분노와 안타까움마저 하나의 영상으로 처리한다.


우리는 현실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연속극 주인공들에게 자기 속을 다 내보이면서 울고 웃는다.

영상이나 화면, 사진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피곤하고 거부감 들고 성가시고 그리고 불편하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볼만하다고 여기면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완곡히 사양한다.

공감하는 마음마저 어떻게 '한 장'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해 하며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거 얼마면 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순창 적성면에 섬진강 미술관이 있다.

강가에 있는 미술관, 발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릴 이름이다.

그쪽으로 가서 시골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미술관으로는 향하지 않는다.

나를 위하고 사람들을 위해 공간이 되는 자리는 피할 것이다. 지금은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자.

미술관도 채계산 출렁다리와 같이 당분간 문을 닫았을 것 같았다.

우리 식구 넷은 호젓한 섬진강변을 그저 두 시간만 걷기로 한다.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면 운치있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시절에 이게 어디냐 싶은 마음으로 한 술 고맙게 뜨기로 한다.

걸음은 밥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나를 좋아해달라 매달리고 싶은 밥.

퍼가도 퍼가도 마르지 않을 섬진강이라고 했던가.

언제나 섬진강을 찍은 모습은 맑았고 갯버들이 흔들렸었고 파릇했으며 아이들이 뛰어놀면 좋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돌기도 하고 요상하게 생긴 바위도 드문드문 만발한 벚나무나 백일홍과 어울려 수묵화나 수채화가 되어 어떤이의 안방에서 오래 간직되어도 좋을 풍경을 나는 섬진강이란 이름에서 찾고는 했었다.

시가 되는 강, 섬진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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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정 앞을 흐르는 물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되었어도 거침이 없었다.

이런 것을 삼켰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것들을 삼키면서 살고 있었나 싶은 물살이었다.

평소 같으면 저기쯤에 작은 다리도 하나 있어서 사람들이 오갔을 텐데 어은정 앞은 깊은 물이 점하고 있었다.

한 걸음 섬진강의 품속으로 들어선다.

어은 漁隱은 그 뜻이었을 것이다.

숨어서 물고기나 잡자.

그것은 탄식이었을까, 고집이었을까, 자조였을까.

양사형이 누군지 모르는데 거기 정자 앞에 써있을 '안빈낙도' 같은 말이 괜스레 보기싫어 그냥 지나쳤다.

하여간 오늘 섬진강은 물고기를 잡기에도 길을 따라 걷기에도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가만 놔둬, 나도 나를 모르겠다며 잡아떼고 거칠게 흐르는 강물을 백 년을 넘게 보아온 백일홍 나무들이 불콰한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바탕 해댈 때가 됐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름 뜨거운 볕을 쬔 목백일홍에는 세월이 켜켜이 반영 反映되었다.


흘러라, 강 江

사납게 울던 물살을 가까이에서 지켰을 꽃나무들.

오늘은 백일홍을 믿기로 한다.

다시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날, 섬진강 이곳을 찾아 희미하게 웃어주겠다고 약속 같은 것을 하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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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널찍한 바위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

두 시간만 걷기로 했는데 지금 여기에서 돌아가더라도 그 시간은 훌쩍 넘어가겠다.

그런데 배가 부르지 않은 밥처럼 모든 것이 아직이다.

조금 더 먹고 싶다.


"너희들 심심할 줄 알아야 해."


몸이 아프면 죽을 먹는다.

다른 것은 먹고 싶지도 않고 먹을래야 삼켜지지 않아서 못 먹는다.

죽, 아무 힘도 없는 죽이 아픈 몸을 달래는 것이다.

많이 아프면 아플수록 아무것도 넣지 않고 물과 쌀로만 끓인 죽을 먹는다.

그것이 사람을 살린다.

심심한 죽맛을 봐야 아픈 사람이 낫는다.

우리가 오늘 지금 이렇게 걷는 시간을 나는 심심한 죽같은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죽 한 사발씩 맛있게 먹어가며 걷고 있다.

심심해 해줘서 그게 고맙다.

앞으로도 심심하게 우리는 시간을 먹기로 하자.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을 입에 오래 물고서 그 순간 우러나오는 맛 하나를 황홀하게 감각하기, 그것을 배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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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 위에 보이는 다리까지 가서 돌아오기로 하자.

끝날 데가 보이는 것은 어떤 감정인가.

그것은 아쉬움인가 반가움인가.

우리는 늘 끝이 난다.

길은 끝이 나는 곳에 서 있다가 저 혼자서라도 또 간다.

나는 그것도 마음에 든다.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겨둔다.

나를 믿지 마, 그게 길이야.

그래서 다음 날이라는 말이 내 안에는 예쁜 팻말처럼 단정하게 꽂혀있다.

그래서 이렇게 우연히 걷게 되는 날도 많이 그리운 것인가 싶다.

섬진강은 그리운 것들이 많은 곳이겠거니, 물 따라 흘렀을 심심했던 삶들에게 인사를 했다.



산이와 강이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아빠가 재미없는 재미라고 그랬는데 정말 재미없었느냐? 묻고 싶다.

제법 잘 걷는 산이도 엄마가 있으니까 걷는 것일 테고, 살짝 힘들어 하는 강이도 엄마만 믿고 걷는다.


감나무 둘레에 심은 토란이 시원한 병풍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산이와 강이, 엄마 세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 보인다.

나?

나는 이쪽으로 가자, 저쪽이 좋겠다.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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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들은 순창에 가서 섬진강을 아주 조금 둘러봤다.

물이 많아서 그리고 홍수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것들의 생채기를 보고 돌아온 걸음이었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아빠는 믿는다.

섬진강은 너희가 찾을 때마다 너희를 살찌울 거라고.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씩 다 보여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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