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값은 내가 낼게 / 이종문

시의,

by 강물처럼

묵 값은 내가 낼게 / 이종문

그해 가을 그 묵 집에서 그 귀여운 여학생이 묵 그릇에 툭 떨어진 느티나무 잎새 둘을 냠냠냠 씹어 먹어보는 양 시늉 짓다 말을 했네

저 만약 출세를 해 제 손으로 돈을 벌면 선생님 팔짱 끼고 경포대를 한 바퀴 돈 뒤 겸상해 마주 보면서 묵을 먹을 거예요

내 겨우 입을 벌려 아내에게 허락받고 팔짱 낄 만반 준비 다 갖춘 지 오래인데 그녀는 졸업을 한 뒤 소식을 툭, 끊고 있네

도대체 그 출세란 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출세를 아직도 못했나 보네 공연히 가슴이 아프네 부디 빨리 출세하게

그런데 여보게나 경포대를 도는 일에 왜 하필 그 어려운 출세를 해야 하나, 출세를 못해도 돌자 묵 값은 내가 낼게



따뜻하고 시원한 말

'밥은 내가 살게'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밥은 격조 있는 단어다.

뭐든지 어울려야 보기 좋다.

그것을 품이라고 했던가.

우리 조상들은 '품'을 참으로 좋은 뜻으로만 꺼내놓으며 살았다.

찹쌀을 곱게 갈아 꼭꼭 다져서 콩이며 팥고물을 듬뿍 묻혀놓고 아이들 입속에 하나 쏙 넣어주는 넉넉함이 세상 보기 좋아서 쓰는 말이 '어미 품'이다.

'품에 뛰어든 새끼는 내어놓지 않는다'는 말에는 아직도 쌔근쌔근 뛰고 있는 어린것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장 약한 것들이 파고드는 '품속'이야말로 따뜻한 피가 돌고 있는 보금자리가 아니겠는가.

관능적이어서 끊임없이 자극적인 것,

슬프면서도 거룩하여 숙연하게 만드는 것,

함부로 보여줄 수 없지만 모두에게 허용할 수 있는 것이 '가슴'이다.

'가슴에 묻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품이란 말이나 가슴이란 말은 내가 아무렇게나 꺼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담아낼 수 있어야 '품'이 되고 '품'이 완성된다.

어울리는 것은 위험하지 않게 담아내는 것이다.

옷이든 지위든 관계든 그것이 물 말아 된장에 찍어먹는 하찮은 한 그릇 밥이든 어울려야 같이 먹을 수 있는 법이다.

밥을 사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를 과시하는 밥은 먹는 것 자체가 '품'이 드는 일이 되어서 싫다.

그래서 나는 네가 사는 밥이 맛있다.

나를 잘 아는 네가 밥을 산다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품이 어울린다고 하면 그런 게 어딨냐며 공짜밥 얻어먹는 솜씨가 좋다 할지 모르겠지만 맛은 사람보다 정직하다.

웅포에 있는 수미옥에 가서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를 시켜 먹던 날도 좋았다.

출세하면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여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선비가 되려 하지만 세상에 선비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땀 흘려 일하고자 하여도 그것 마저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 줄을 쓰겠다는 사람은 한 줄 생각부터 다듬어야 한다.

바라는 것이 되고자 한다면 되고자 하는 것을 천 번은 바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삶은 되묻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어디 공으로 될 일이냐고 웅포에 흐르던 금강이 속삭이지 않던가.

밥은 인연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

내가 밥을 사는 사람은 인연의 맨 앞에서 총총히 다가온 사람이다.

그의 삶이 무엇이었든지 밥그릇 앞에서 겸손하고 다정하게 마주 할 수 있다면 밥 한 끼 제대로 먹은 셈이다.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방학중이라 함께 도서관에 온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할까.

시원한 묵 밥을 먹어도 좋겠지만 아빠가 밥이 되어도 좋으니까 아이들이 가자는 대로 어디든 따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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