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절에는 따로 ´어린이용´이 없었습니다. 대충 사용합니다. 아버지가 쓰던 것을 큰형이 큰형 다음에는 작은형, 쓸 만큼 쓰고 헌것이 되면 애들 것이 됩니다. 서로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만났을 때 뜻밖에 반갑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잘 씁니다. 사람도 물건도 정성을 다합니다. 깨끗이 닦아주면 신나게 달리는 자전거, 그것이 꼭 그랬습니다.
그 시절은 그렇게 순서와 차례를 배웠던 거 같습니다. 기다리면 버스가 왔고 첫눈이 왔으며 내 차례가 왔습니다.
아이들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린이용입니다.
책상부터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어까지 각각 자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리하고 심플해 보입니다. 수저와 젓가락도 어린이용, 고백하자면 가르치는 것도 맞춤형입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기다리는 것과 자기를 상황에 맞추려는 - 주위와 어울리려는 -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더 이상 물건에 몸을 맞추어 보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다 우리에게 맞춰져 있는 것을 공들여 수고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냄비 같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 냄비도 다 사라지면 - 다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견주어질까요.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가 끝나는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내 자전거가 없었기 때문에 거금 200원을 주고 자전거를 빌려 탔습니다. 한 시간, 다른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그 시간을 보냈지만 저는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살던 서학동에서 가장 먼 곳은 운암 저수지 - 지금은 옥정호라고 불리는 -였습니다. 어린 눈에도 거기 가는 길은 멀고 가난해 보였습니다. 버스가 요동치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견디고 나면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나왔습니다. 열두 살쯤 먹었던 저는 거기를 세상 끝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자전거를 빌리면 서학동에서 평화동으로 달렸습니다. 평화동 사거리부터는 신작로가 끊겼고 거기부터는 여행 같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땅에 들어선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었습니다. 흙먼지가 장엄하게 보였습니다. 더 가면 시간이 지나버리는데 매번 그렇게 10분이 넘고 30분, 한 시간이 더 지나버리곤 했습니다. 교도소를 지나 문정 국민학교 앞을 지나 동적골이라고 쓰여있는 동네를 지나 구이까지 다녀오는 나를 저는 많이 좋아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그 감각이 좋았습니다. 목이 마르고 볕이 뜨거웠지만 플라타너스 아래를 지날 때에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단골인데, 어정쩡한 모습으로 - 방금 대장정을 끝마친 감개무량과 시간이 지나버려 더 물어야 하는 돈 걱정까지 어우러져 - 자전거 대여점 아저씨 앞에 서 있습니다. 내일도 또 올 거니까요, 그 말이 입에서 맴을 돕니다. 그 순간에 삶이 있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거 같았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것이 마음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둑한 마음. 그래도 괜찮아하는 마음.
어디에서 저는 철이 들었을까요.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요한 16:18
하루를 잘 산 날에도 그때만큼 땀 흘리지 않습니다. 재미있어도 편했어도 너그러웠어도 그날만큼 멋지지는 않습니다.
설렘이 쏙 빠져나간 내 몸에 나를 맞춥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다 써봐도 후줄근할 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춘다는 것은 설렘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맞춘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맞춘 나를 입고 그렇게 맞춘 날에,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