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시기만 해도
ㅡ그래서 재미있습니다.
바다를 보러 왔다가 칼국수를 먹은 사람이 있고,
칼국수를 먹으러 나와서 바다를 보게 된 사람도 있으니까요.
같으면서 다른 삶입니다.
그리고 다르면서 같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러 여기에 왔는지, 이런 말은 이제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먼 데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밥 먹고 사는 듯합니다. 하루라도 먼 하늘을 보지 않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저는 충전되지 않습니다.
나와는 먼 것들을 듣고 보고 읽고 느끼면서 그 존재를 깨닫고 때로는 고마운 생각에 때로는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바다를 보러 나왔는지 칼국수를 먹으러 나왔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못했습니다. 바다도 좋고 칼국수도 좋은 것이 내 문제이며 내 자랑입니다. 정체성은 고쳐야 할 것도 아니고 고쳐지는 것도 아닌데 먼 곳을 보고 있으면 비로소 그게 누구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파도 소리는 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싯구를 읊조렸습니다. 섬하고 섬을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기도가 된다는 말이 대롱거렸습니다. 백사장에 느닷없이 감나무 하나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거기 붉은 감 몇 개로 서해를 희롱하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바다여, 너는 무엇을 기도하는가. 섬들아, 그 바다 위에서 출렁이는 너희들아, 하루는 하루는 하루는 하루는 너하고만 놀아 볼 것을. 먼 곳에 있어도 거기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갸륵한 것들은 세상을 닮았습니다.
너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 처지가 안타깝도록 갸륵하다.
뜻이 갸륵하고 효성이 갸륵하고 정성이 갸륵하다. - 이상 표준국어 대사전
착하고 장한 것도 갸륵하고 딱하고 가련한 것도 모두 갸륵합니다.
소금이야말로 갸륵합니다.
사람은 바다를 가졌습니다. 그 바다가 출렁거립니다.
거기에서 고기를 낚고 배를 탑니다. 어디로든 나아갑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기도할 때 꽃이 핍니다. 바다의 기도는 소금입니다. 바다는 썩지 않습니다.
소금꽃 피는 동네가 보고 싶습니다.
꽃 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를 사람은 그리워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칼국수를 먹으러 나왔는지 바다를 보러 나왔는지 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웃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느냐며 웃었습니다.
먼 데, 그렇더라도 오늘 돌아갈 수 있는 데에서 기도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기도인지, 역시 도가 높은 스님처럼 달은 묻지 않습니다.
오래된 기도라고 말하려다 나도 가만있었습니다.
빛이 멀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