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에 ´공기 같은´이라는 옷을 입히면 그것이 무엇이든 근사할 것입니다.
근사라는 말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요. 우리는 무엇에 닮아가고 싶어서 이렇듯 성실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비슷하거나 닮았다고 할 때 사 : 似라고 씁니다.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근사 近似는 그것은 아니나 그것에 거의 같아서 썩 좋다는 말입니다. 저는 근사하다는 말에서 ´이상향´을 생각해 냅니다.
가본 적 없고 본 적 없는 그 무릉도원 말입니다. 늘 저만치 떨어져 피어나는 꽃, 그 꽃이 지키는 영토.
꽃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꽃향기에 가까워집니다. 저 빛깔과 향에 알맞은 꿈을 간직합니다. 그 순간 예뻐집니다. 그러니 꽃을 꺾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 완상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발로 딛고 올라서는 그런 곳은 아닐 거라는 확신을 저만치 떨어져 핀 꽃들에게서 발견합니다.
닮은 것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돈 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든 실컷 먹고 내빼겠다는 심보입니다. 손님을 가장한 손님, 비슷하게 보여 사람을 속이는 데 목적이 있는 그것은 근사하지 않습니다. 유사품에 속지 말라고 할 때 말하는 유사 類似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속에서 나왔어도 어쩌면 그렇게 다르냐는 어미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비를 두려워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도 속이 완전히 다른 것은 누구나 애를 먹입니다. 곤경에 빠뜨립니다. 비몽사몽 중에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꿈이 깰 때를 기다려 제 걸음으로 바로 걸어야 합니다. 근사한 것과 유사한 것은 그 목적이 다릅니다. 속이지 않는 것이 멋인 듯합니다. 속일 줄 아는 것이 솜씨인 줄 알았는데 속이지 않고서 사는 거야말로 진미 眞味였습니다. 맛과 멋은 서로 닮았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돕습니다.
근사한 사람도 많습니다.
황지우 시인이 쓴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소개합니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밭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에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떨어 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 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그 말 해주고 싶습니다.
공기 같이 근사한 사람들에게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