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1

또 하나의,

by 강물처럼


2022, 0921, 수요일


어떤 것은 더 알게 되고 어떤 것은 잊힐 것입니다. 예전에 알던 것들이 새로 알게 된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섭니다. 그러지 말라고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바쁘고 자리도 부족합니다. 고마웠다는 인사도 못하고 지냈다는 것을 새로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 틈에서 알아차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황현산, 과거도 착취당한다에서





내 지금의 생각이 너에게서 왔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너에게서 왔으나 너에게로 가는 길이 이제는 없다.



내가 말하고 느끼고 외로워하는 것들을 너는 어디에서 얻어다 내게 먹였나.



나를 만들고 창조하고 낳은 날에도 빛은 산란하고 굴절하며 반사한다.



매일 태어나는 너의 신기루, 매일 죽어가는 나의 그림자.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나밖에 없는 다리로 걷는 꿈을 꾸는 연인.



나는 어지럽고 나는 늙어가는 터널 한가운데.



너는 손짓이며 유혹 그러나 죽고 나서 부르는 노래.





´시간´을 끄적임처럼 적어냈습니다. 어떤 의미로 전달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생각을 나열하는 것으로 글이 된다면 그것처럼 복 받은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마 더 정리하면 다른 모양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보고 싶습니다. 있었던 대로, 아니면 있는 대로 혹은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환상처럼 말입니다.





왜 시간이 생각났을까요.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3





2천 년 전 대제국 로마의 종교가 되어 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을 저는 이 말씀에서 봤습니다.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인류를 세상을 구원하는 반석은 ´죄인´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땅바닥을 보고 그림 하나 그린 것 같습니다.



시간을 죄인처럼, 죄인을 시간처럼 그려봤습니다.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오늘은 여기 내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