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2 목요일
새벽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먼 데 닭 우는소리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어디서 키우는 닭이냐. 너는 어둠 속에서 길게 우는구나. 단단하고 묵직한 울음을 울음이라 부를까. 그대는 울지 못한다. 길게 날아와 가느다랗게 꽂히는 울음이어야지. 초리와 같이 파고들어 날렵하게 사람의 신경 따위는 툭 베어내고 새벽에 턱 버티고 앉아라. 기세 좋게 울리는 닭 울음소리는 귀신의 곡소리를 쫓는다. 그러지 마라. 쥐 죽은 듯 사라진 소리들, 소리가 멈추면 내가 늙는다. 들끓던 매미 소리로 무엇을 해 먹었던가. 헛배가 부른다. 새벽에는 가난하게 살자, 다 울음 소리야, 닭 울음소리.
귀뚜라미는 아닌 것이 나지막한 풀벌레라고 부르면 좋을 것들이 찌륵찌륵 저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새벽 공기는 소리가 타고 오르기 좋은 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데서 훈련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서울서 보내준 조그마한 풍경이 눈앞에 반짝입니다. 마음이 맑아지는 소리를 소나무 옹이로 만든 새에게 걸어줬습니다. 그 새는 날지 못합니다. 목이 무거워졌습니다. 울까, 언제나 그대는 울까.
어쩌다가 울리는 것은 다 우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웁니까, 울립니까. 새벽은 울립니까, 웁니까. 차라리 울고 맙니다. 울리는 일은 너무 울리고 마니까요. 깅, 깅, 징, 징, 땅, 땅, 땡, 땡, 왕, 왕, 내가 울린 사람들이 옛날부터 새벽이었습니다.
무엇을 쓴 듯한데 시라고 그러면서 시치미 떼볼까, 아니면 기차처럼 이어서 어디 다른 데로 훌쩍 떠나볼까 싶은 문장들을 찾아냈습니다. 새벽이니까, 아 그 사이에 앞 건물의 실루엣이 후루루 드러나고 있습니다. 역시 나는 늙었습니다.
사실은 위에서 그만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쓰기만 하면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이 되고 마는 손을 가졌나 봅니다. 그것이 이왕이면 만두였으면 좋겠는데 먹도 못하는 한 줄 회한입니다. 무명지라는 이름은 늘 그렇게 아린 구석이 있습니다. 딱히 이거다 싶은 재주가 없는 사람들의 묘비에 비치는 허름한 가을 햇살이, 새벽을 아침으로 여는 구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곧 문이 열릴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