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 -1

또 하나의,

by 강물처럼

2022,0923 금요일


무슨 남자애들이 인형이야?

페레로 로체 초콜릿, 아이스크림 모바일 쿠폰, 추억의 맛 쫀드기라고 쓰여 있는 과자부터 시작해서 과자 한 보따리를 꺼내놓습니다.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줬어.


요즘 아이들은 필요한 것 사라고 현금을 건네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현금 7만 원, 우와.


생일 한 번 돌아오면 부자가 됩니다.


저 의기양양한 표정이라니,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여자아이들한테 받은 것은 없냐?


선물을 줄 만큼 친한 사이는 없다고 그럽니다.


우스개로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나는 양보다 질이 좋은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선물 받고 싶습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한테서 긴 편지가 들어간 선물을 기대합니다.


산이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아이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탐지기나 레이더 같은 것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미세한 분열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생일이란 말이 거북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말하기 불편할 때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냥´ 불편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하고 생일은 즐겁고 반갑고 좋은 날로 연결되어야 마땅한 것을 어서 지나갔으면 싶고 아무도 몰랐으면 싶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어울리지 않은 연결입니다. 그 감정이 뿌리처럼 멀리 자랐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다 보니 생일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나를 나가버렸습니다. 쪽지도 남기지 않고 자출* 自出을 해버렸습니다.




결혼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평범해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평범한 것이야말로 정상적입니다. 비로소 나를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시켜준 사람들이 내가 결혼으로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생일에는 열심히 축하합니다. 더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계속 축하할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도 나를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꽃 대신, 훈장 대신 네팔 같은 데에 가서 크게 절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쿠스코 같은 동네에서 빵을 찍어 먹다가 그러고도 싶고 새벽하늘에 오로라가 추는 춤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면서 언 땅에 이마를 대고 자축* 自祝 하고 싶습니다.




생일이 지나고 열기가 식었습니다. 썰물은 갯벌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갯벌은 호흡하며 생명을 키웁니다.


친구들이 고맙지?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말이 나왔습니다.


산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눈으로 답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났습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신뢰감이 가서 저도 좋아합니다.




공부하는 것은 ´메시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메시지로 가득한데 그 메시지를 읽고 전달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다. 쉽게 전달할수록 고마운 일이지. 나는 엄마한테 말해주고 너는 친구들한테 말해주고. 모처럼 셋이 앉아서 두런거렸습니다. 산이는 수학을 좋아합니다.




서울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SKY에 다니는 많은 이공대 학생들이 스스로 자퇴를 하고 다시 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의치한약수. 그것이 무슨 말이고 어떤 순서인지 눈치 빠른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새로 만들어진 한자 성어는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메시지 이야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저것을 읽어줘야 하는데 그러면서 말입니다.




너는 그런 공부를 해라.


어쩐지 제일 좋은 생일 선물을 건넨 듯하여 어제는 잠이 잘 왔습니다. 솔솔 시원했습니다.




* 자출 - 가출이란 말에 빗대어 만든 말. 자기 자신과 스스로, 두 의미를 모두 살려 자기를 나가버린 상태를 일컬었음.

* 자축 - 자기에게 생긴 좋은 일을 스스로 축하한다는 자축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거기에 자출과 대비 효과를 의도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