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4, 토요일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이며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 것은 지혜일 것입니다.
오늘 하늘은 더없이 맑고 좋습니다.
그 좋은 하늘 아래에서 내내 즐겁기를 바랍니다.
보름 정도 있으면 중, 고등학교는 2학기 중간시험을 치릅니다.
옛날을 떠올려보면 금방 아시겠지만, 시험은 늘 좋은 시절에 있습니다. 벚꽃이 피거나 코스모스가 한창일 때. 그렇지 않으면 꼭 중요한 약속이 생기는 날, 시험은 거기에 오뚝 앉아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것이 시험의 진정한 위력인 듯 보입니다. 선택하라, 그리고 응답하라.
저는 시험에 합격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나는 노력, 족집게 강사, 최고의 학습 환경, 그런 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머리´ 탓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지독히도 운이 없는 친구도 그중에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적어도 8할은 내 탓입니다. 그런데 내 탓 아닌 내 탓이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아무 일도 없어야 합니다.
주위는 새벽처럼 정적에 휩싸이고 사람은 고요해야 합니다. 사람의 밖과 안이 서로 호응하고 도와야 하는 시험을 먼저 치르는 것입니다. 그 시험에 넉넉하게 합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아직 우리는 시험이 더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시험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나를 지키는 시험, 낙마를 하면 버드나무줄기라도 부목*으로 다리에 대고 다시 말을 타야 하는 시험을 우리는 치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시험, 본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하니까요.
이것을 풀면 저것은 저절로 풀릴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 지점에 있습니다. 그날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점묘화의 아이러니는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점으로 채우는 순간 새로운 여백이 탄생하는 데 있다. 점과 점이 겹쳐지는 지점에 원근이 생겨나는 동시에 원래 평면이었던 화면에 입체감이 부여된다. 무수히 많은 점으로 화면을 뒤덮으려 애쓸수록 무수히 많은 여백이 태어난다. 이 여백은 시선으로 포착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기에 존재의 궁극적인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다.
- 손홍규, 『배회』에서
75년생 작가에게서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가 정리해 줬습니다. 맞습니다. 하루하루 지금 하늘 아래를 지나는 이 순간들이 모두 하나의 점들이 되어 그림을 이룰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여백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 발아래에서 그리고 방금 바라봤던 시선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좋아야 합니다. 좋으셔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무과 시험에서 낙방한 고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