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5-1

또 하나의,

by 강물처럼

2022,0926, 월요일


예를 들어, 300년 전에 누군가에게 ´어리다´ 그랬으면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너는 어리석다(愚)´


마음과 생각이 어려 변변치 못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적다고 할 때 ´어리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적은 것과 어리석은 것이 함께 손잡고 다니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그래, 어린것은 살아온 햇수가 적은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어리석기 마련이다는 사회적 통념이 형성됩니다


아직 그 흔적이 남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놈´에는 나이도 적지만 그보다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라는 비난과 힐난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 존재에 시선이 머물렀던 것입니다.


안 됐다. 너희가 괜히 욕을 얻어먹는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말을 왜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지 일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마음이 서면 말이 엇나가는 것을 막아 주지만 말도 그렇습니다. 말이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 마음도 자세를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데에서 형식을 찾느라 수고와 공을 들이는데 사실은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을 훨씬 쉽게 풀어가는 방식인 듯합니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는 말은 그저 있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삭막해서 싫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친근하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편한 대로 하고 사이도 좋으면 서로 좋은 인연입니다. 하지만 격식을 차리고서도 느긋할 수 있다면 그것도 맛보기는 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일은 수없이 많은 갈림길이 있으니까요.




저야말로 딴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멀리 돌았습니다.


´어린것´에 다른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300년 전과 지금의 어린이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것이야 마찬가지여도 지금의 ´어린이´에는 경멸이나 무시가 묻어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귀엽고 보호받아야 하는 새싹 같은 이미지가 단연 돋보입니다. 시선이 바뀌고 인식이 바뀐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대통령이 욕하고 다니면 어떡할까 싶습니다.


더 말하는 것도 심란할 뿐이어서 입을 손으로 막듯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라는 가르침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런 사회가 되어가는 것을 앞장서서 막아내야 할 사람들이 앞다퉈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워 올리는 십자가는 모두 호화롭고 빛나고 높고 뾰족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 박경리 , 일 잘하는 사내


늦봄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에 들렀던 날 볕이 좋았습니다. 거기에 가을볕이 먼저 들렀다가 여기 찾아올 것입니다.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거라는 선생의 말씀에 밑줄을 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