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나
2학기 중간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산이는 중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3학년 남학생들이 모두 친구라고 그런다. 게임도 좋아하고 학교도 좋아한다. 얼마 전 생일에는 갤럭시 버즈를 선물로 골랐다. 아이들이 귀에 꽂고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것을 자주 봤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서 엘리베이터에 탄 학생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에어 팟. 그런 나이 때가 있는 듯하다. 옛날에 나도 그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워크맨.
나는 결국 한 번도 워크맨을 갖고 다니지 못했다. 그런데 정확하게 더듬어 보면 갖고 싶긴 했어도 부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부러울 것 같으면 먼저 외면했다. 나에게는 그런 편리한 습성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생각나지 않는 좋은 것이 내게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 끝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그랬고 수덕이의 스카우트 모자가 그랬으며 대충 맨 것 같은 태권도 도복 위의 검은 띠가 그랬고 창기가 처음 신고 온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그랬다. 금방 식어버리는 호기심이 넉넉하고 편했다. 대신 내가 숨길 수 없었던 감정이 하나 있었다면 '먼'. 나하고 먼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것이 신기했다. 나는 동경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어렸으니까 요령 있게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구석이 없다. 나는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본 적 없는 것들, 나하고 먼 것들에게 친밀감이 솟는다.
그런 노래 가사가 어디 있었다. '나와 같다면'
내 실패는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내 슬픔이 아무것도 꽃피우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이라는 말은 인정하지 않는다. 돌보지 않는다. 나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같기를 바라거나 꿈꾸지 않는다. 그런데 그 대목을 혼자서 부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마음은 알 수 없는 곳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먼 데로 가는 일을 꾸몄는지도 모른다. 오렌지 향기가 바람에 날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를 모르고 열을 세는 사람은 불안하다. 쓸쓸하다. 숫자는 그 사람이다. 채워지지 않는 1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면의 소리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들을 수 없는 그 사람들이 있다. 영화 대사처럼 미치거나 전설이 되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몇몇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늘 저 멀리 있는 것들을 세어가면서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시간을 살았다. 마른 잎이 되어 날아가기도 했을 것이다. 가까운 자리에 먼 곳을 잉태하고 누우면 별이 쏟아졌던 밤들이 영영 계속되었다.
산이가 일찍 학교에 갔다.
제 방을 나오면서 엄마, 사랑해, 그러는 것을 들었다.
그럴 수 있지, 자기 전에 키 크라고 발을 주물러 주고 오늘 누구하고 놀았는지 15년 동안이나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그럴 만하지. 더구나 가을이니까.
나는 그 순간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쓰지 못한 토요일 일기를 쓰고 있었다. 다들 바쁜 월요일 아침에 이틀 치 일기를 쓰느라 커튼을 걷지도 않고 무슨 상념인가, 또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산이에게 가장 최근에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 때는 일부러라도 신호등 앞에서 넌지시 던졌던 말인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그만큼 노화되었던가 보다. 늙는다고 사랑이 식을까. 그럴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덮이는 것과 덮는 것은 항상 필요 이상으로 두꺼웠으니까. 아이도 수줍어한다. 좋은 것이 좋은 줄 아는 까닭에 사람은 부끄럽게 끄덕인다. 그것은 건강하기도 해서 잠시 열을 띤다. 차 안에서도 붉은색 홍등이 동동 뜨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기억하겠지. 먼 훗날에.
나한테도 말을 던진다. 캐치볼을 하듯 잘 받을 수 있게 던진다. 대신 현관문이 곧 닫힌다.
"아빠, 따랑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
어제 일요일에 산이는 시험공부한답시고 밖에 나갔다. 스터디 카페에서 친구하고 약속을 했다는 말이 내가 그를 놓아줘야 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하루를 보냈다. 나는 평소대로 수업을 했으며 다른 학생들의 시험공부를 돌봤다. 누구는 열심히 해서 누구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나를 바쁘게 했다. 내 시계는 그렇게 돌아갔다. 산이는 공부하다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고 그런다. 밤 8시가 다 되어서 돌아오는 아이가 방방 뛰면서 재미는 있었는데 너무 길었다고 푸념이다. 그 시간에 나는 이미 지쳐서 누구 하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나 자신하고도 잠시 신호를 끊고 '멍'.
먼 곳에 있으며 대체로 멍한 상태.
나의 유토피아는 그렇게 생겼다.
그랬던가 보다. 산이는 책가방도 친구 집에 놓고 깜박 잊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오래 목욕을 했다. 콧노래를 불러가며 뭐가 좋은지 저는 지금을, 먼 것을, 나를 , 저를 실컷 만끽한다. 그러기로 하자. 평화잖아. 평화.
우리가 있어야 할 곳, 먹어야 할 음식, 입어야 할 옷은 그거잖아. 타이스의 명상곡이 흘렀으면, 여기에서 흘렀으면 좋겠다. 그럭저럭 한 페이지 넘어갈 만한 장면 아니었을까. 아 흘러라, 곡진 것들아 둥글게.
월요일 아침이 길게 기지개를 켠다.
밝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