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5, 수요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묻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왜 기도하느냐? ´고 물어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사람의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때가 있습니다. 가만 떠올려 보시면 아실 겁니다. 누군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거나 기도를 하고 있으면 어린아이들도 사뿐사뿐 지나갑니다. 건들지 않습니다. 대부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던 것도 그만둡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아서 엷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고요함이 주위에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입니다. 새벽 종소리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종소리´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시끄럽다고 ´민원´으로 시끄럽게 떠듭니다. 그러면 다들 쥐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고요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쓸쓸함이 거기 도사리고 있습니다. 키치적이다는 말입니다. 고상한 것은 그런 식으로 고요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멋이 있습니다. 칡 나무와 등나무가 어울리고 바람과 비가 안개를 낳는 순치가 거기 있습니다. 기도에는 다 헤지 못하는 별이 가득합니다. 자랑처럼 풀이 무성한 별 헤는 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하고 싶습니다. 내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왜 기도문을 쓰느냐? ´는 질문은 서너 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도할 줄 몰라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저절로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달라는 그런 기도 企圖가 아니라 나와 네가 없이 타조의 걸음을 타고 낙타의 울음을 입고 전설처럼 깃발을 날리며 어디를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가라앉아서 솟아오르는 그런 땅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길 없는 길입니다. 물 없이 뜨는 배, 허공 없이 나르는 비행선, 바람 없이 기대는 기도 祈禱. 무수히 많은 걸음으로 쌓아야 되는 탑입니다. 내가 쌓고 내 아들이 쌓고 그 아들의 아들이 다시 쌓아가는 그 길을 바랍니다. 나는 내 돌을 들어다가 거기 얹어 놓습니다. 내 돌은 기도입니다.
날이 화창합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만날까 싶습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