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06, 목요일
40일 있으면 수능 시험 보는 날입니다.
수험생들에게는 그 시간이 광야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것이 우리의 영광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최선을 다하고 누군가는 미처 거기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성공이며 과정입니다. 누가 성공을 보고 웃습니까.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없습니다. 광야를 벗어나면 더 큰 광야가 보일 것입니다. 광야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존재가 머무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우리는 꽃이 되지 못합니다. 꽃은 없습니다. 그러니 해바라기나 코스모스, 맨드라미, 히아신스나 다알리아, 아네모네로 잘 살아야 합니다. 꽃은 상징이며 은유입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꾸는 꿈같은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매일 밤 우리는 꿈을 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꿈을 소망합니다. 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절실히 바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수수께끼입니다. 꽃이 아니면서 꽃인 것이 삶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둔 별자리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으로 된 집에 내가 살고 있습니다. 서로의 뒤꼭지를 바라보며 탄생과 죽음은 광야를 가꿉니다. 낙원처럼 그리고 사막처럼. 나는 거기를 혼자서 다닙니다. 청소도 하고 몸을 씻고 또 무엇을 할까요. 시험은 내가 만든 놀이터에 구르는 모래알이었습니다. 모래성도 만들 수 없는 그것이 먼지를 일으키면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니 잘 지냈으면 합니다.
수험생은 수험생이었다가 부모는 부모였다가 학생은 학생이었다가 그렇게 말입니다. 내가 웃으면 우주가 웃는다는 말이 저기 보입니다.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멀었습니다. 흥미로운 일입니다.
목요일이니까, 심심하니까, 보고 싶으니까, 그나저나 XX는 어떻게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미, 카라, 국화, 동백, 목련, 튤립, 혹시 매화나 수국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꽃인 줄 아는 데에는 얼마나 더 걸려야 할지, 높은 분께서 모범을 보이십니다.
저는 이렇게 적어보겠습니다.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 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90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 이생진, 『무연고』 시집의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