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0, 목요일
나도 웃고 저도 웃습니다.
자꾸 딸아이가 등장해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딸 바보라고 그럴 것도 같고.... 하루를 보내면서 내 이야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존재가 그 아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과 저녁을 둘이서 마주 앉아 먹는 사이는 생각보다 긴밀합니다. 내가 묻기 전에 묻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말로 궁금해합니다. 꼭 다른 3인칭을 등장시켜서 자기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는 것도 들어줄 만합니다. 그렇게 감춰도 누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모르는 척, 곰곰이 해결책을 찾는 척하면 참지 못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 그때 저는 한마디만 얹으면 됩니다. ´그래´
어제저녁에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밥을 먹으면서 사연을 들었습니다. 마침 편지였습니다. 5년 전에 썼다가 부치지 못한 어느 20대 남자가 보낸 사연이었습니다. 무채를 썰어서 끓인 뭇국이 단맛이 났습니다. 소고기를 넣지 않고 무만 넣고 맑게 끓인 국은 속을 편하게 합니다. 아침에 먹었던 것을 아껴서 저녁에 다시 꺼냈습니다. 강이야, 뭇국 맛있다. 얼른 끄덕여지지 않는 것이 가을 들판에 서 있는 작은 느티나무 같았습니다. 이거 끓일 때 먼저 육수를 내는데 엄마가 전날부터 해놓은 거 알아? 육수는 뭐로 내냐 하기에 아마 멸치 하고 다시마였을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문득 다랑어포 하고 무는 맛이 어울릴까 궁금했습니다.
20살에 마음에 들었던 같은 학교 여자 친구, 그 친구에게 짓궂게 굴었던 이야기,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군대에 갔으며 거기서 들었던 그녀의 새 남자 친구, 그리고 177번 훈련병의 부치지 못한 편지였습니다. 윤종신의 노래 ´오래전 그날´이 흘렀습니다. 물 하고 소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파야. 액젓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엄마는 아예 쓰지 않으니까 놔두고 이 파란 파맛이 전체적으로 뭇국의 수준을 결정해. 무하고 파, 그 두 가지로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이지. 방금 한 밥하고 잘 어울리지 않냐? 강이는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놓고 노른자를 터뜨렸습니다. 아차 싶었는지 냉장고에서 케첩을 꺼내 색을 덧입혔습니다. 너는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지. 마침 파김치가 잘 익었습니다. 파김치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좋고 나도 좋았습니다. 음악이 계속 흘렀습니다.
아빠도 편지 썼었는데.
그런데 나도 못 보냈어.
강이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라디오 사연이 초등학생들 이야기 같았답니다. 저희들도 짓궂게 굴고 두근거리고 말 못 하고 그러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아빠도 그랬다니까 둑이 터진 것입니다. 물이 쏟아져 넘어왔습니다. 아마 강이는 엄마를 생각하고 한꺼번에 다 상상했나 봅니다. 왜 그 쉬운 것을 못하고 말았어? 하는 표정입니다. 그러면서 다들 초등학생 같다고 그럽니다. 간장에 절인 깻잎도 밥 먹다가 두 번 정도 젓가락으로 떼어먹으면 살살 후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리드가 떨면서 소리가 나는, 풀피리처럼 몸 전체로 부는 연주는 여름날의 추억마저 되살려 놓습니다. 맛에는 기억이 뿌려집니다.
그 여학생은 잘 살고 있을까.
상념에 잠기기 좋은 계절이며 저녁이고 식탁이었습니다. 다 잊고 지낸 것 같은데 바람만 불어도 호수는 살랑거립니다. 살아있으니까요. 사랑하면 그래, 네 말처럼 유치해지지. 그래서 빠졌다고도 그러고, 열병 같다고도 그러거든. 또 웃습니다. 왜?
엄마랑 아빠도 유치하잖아.
강이야, 뭇국은 어땠어?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쪽으로 가면 맞을 거야. 맛이 전해지는 방향을 찾아야 돼. 달콤하고 부드럽고 아이스크림 같거나 마카롱같이 맛이 우리가 먹고 있는 가을 뭇국처럼 밥이 되는 식탁에 앉아야 해. 그러면 사랑을 감별할 수 있을지 몰라. 뭐가 들어간 맛인지 알 수 있다면 너는 요리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때 음악이 흐르면 너는 춤을 출지도 몰라.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웃겠지, 아마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거나 네가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나도 웃고 저도 웃습니다.
지난 것들을 펼쳐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기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함께 합니다. 우선 미안한 것과 그래서 아쉬운 것이 가장 커다랗습니다. 조금 길긴 한데 인상적이어서 적어보고 싶습니다. 생략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되니까요.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다섯 장째 관음초를 베끼는 나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이날따라 말씀을 제법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베끼는 보살초를 보았다. 고작 몇 주 사이 어머니의 붓질은 과연 더 가벼워져 있었다. 여전히 공들여 베끼기는 하지만 속력이 빨라졌고 붓놀림이 자유로워졌다.
용서라니. 마치 쇠붙이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평생을 꼿꼿이 살아온 어머니는 어디에 용서하고 말고 할 것들을 쌓아두고 있었나.
후회가 된다.... 다 후회가 돼.
이틀 만에 의식을 되찾았던 재작년 가을, 입원실 침대 맡에 모여 앉은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처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뭐가요 어머니, 하고 오빠가 거푸 물었으나 어머니는 대답 없이 눈을 감아버렸었다.
어머니가 후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3천 장씩 불화를 베끼는 것으로 무슨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하는 걸까.
- 한강, 아기 부처 중에서
오늘도 이렇게 건넬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