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31, 월요일
모처럼 만난 친구와 조금 멀리 금산사 앞에까지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바쁜 시간도 지나 식당 안은 넉넉한 분위기였습니다. 토요일 밤은 오붓했습니다. 조금 멀리 가서 밥을 먹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그 집 반찬과 밥이 나 같은 사람한테도 맛있는데 외국에 오래 머물고 있는 너한테는 얼마나 맛있겠냐, 싶은 마음이었고, 두 번째는 일종의 영업 기술입니다. 흔히 말하는 아이스브레이킹 Ice Breaking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그것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연설일수록 어색하고 딱딱할 수 있는 것을 적절하게 녹여주고 시작합니다. 나는 그들이 단순히 유머를 소중하게 여긴다기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생활 가운데 실천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엿봅니다.
내게 중요한 사람일수록 드라이브 코스는 신중해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서로에게 적합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일식이나 월식처럼 지구 혼자가 아니라 달이나 태양의 감각이 서로 마주치는 것 말입니다.
가면서 하는 이야기는 보통 느긋합니다. 가기만 해도 좋은 것을 이야기까지 나눈다고 생각하면 덤으로 좋아집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것도 싫은데 이야기까지 해야만 한다면 속이 불편할 것입니다. 밥을 먹기도 전에 더부룩해지면 맛있는 밥은 턱도 없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는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친구하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복음 말씀을 뒤에 적고 네가 하는 묵상을 앞에 놓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음´을 더 잘 읽게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쉽게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6학년 강이가 새벽 미사에 복사를 섰습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일어났지만 으레 하는 일이니 하면서 성당에 갔습니다. 눈이 내리고 겨울이 오면 더 고생스러울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도 월요일 6시 미사는 일찍 마치십니다.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듯합니다. 강이는 성당에 다녀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보다시피 묵상을 적고 있습니다.
오늘 좋은 일 하나를 벌써 해버렸습니다. 강이하고 나란히 복사를 서는 5학년 남자아이는 애티가 있어 보였습니다. 대복사를 해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역시나 종소리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성당에서 잠시 그 아이와 함께 종을 치는 연습을 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 정도´ 소리가 좋은데, 아이가 물었습니다. ´은은하게´가 뭐예요?
그거 어려운 말이다. 느낌이라서.
나도 잘 치지 못하는 종을 여러 번 쳐가면서 소리를 구분하게 시켰습니다. 힘을 들이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 거리를 멀리 잡는 것보다 가깝게 잡고 너무 가까운 것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지점을 같이 살폈습니다. 사실 저도 연습이 좀 필요했던 터라, 겉보기에는 내가 가르친 것 같지만 속은 내게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자아이는 아마 오래 기억이 날 것입니다. 미사 때 종을 칠 때마다 오늘 아침이 생각날지도 모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제가 직접 산이에게 배웠던 것을 시전한 것입니다. 산이가 종을 잘 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듣기 좋았던 거 같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내려오는 산이에게 다가가 ´너 종 한 번 쳐봐라. ´ 그러면서 한 수 배웠습니다.
산이도 기분이 좋았는지 어깨에 계급장을 하나 떡하니 올린 기세입니다. 종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가로 틀면서 턱을 내밀고 사람을 아래로 내려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종소리 꽤나 좋았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이 좀 풀리면 좋아지겠지 싶었는데 좀처럼 능숙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었던 것이 서로에게 좋았습니다. 종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종을 친다,였습니다. 때리는 것과 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은 ´때리는´ 것이었고 산이의 오른손은 그네를 미는 듯이 부드러웠습니다. 밀듯이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종을 치는 방망이 끝이 오르는데, 산이는 그대로 평행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소리의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았구나.
벌써 7시 25분입니다.
오늘 묵상은 이런 식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루카 14:14
장례식장에 가면 수많은 화환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꽃들인지 항상 어지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저뿐인가 싶습니다.
사고가 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애도하고 애통해하며 슬퍼할 것입니다. 저도 그분들의 평안한 안식을 함께 빌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진을 찍고 상대를 공격하는 구실로 삼고 슬픔 없는 슬픔을 짓느라 애쓰는 연기는 이제 식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