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5-1

11월이 왔다

by 강물처럼

2022,1101, 화요일


11월이 왔다.

오래 걸려서 다시 그 계절 앞에 선 기분입니다.


작년 오늘도 11월이 왔다는 인사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11월은 기다린 적 없이 기다렸던 시간입니다. ´빈´ 것들의 시간. ´ 없이´ 흐르는 음악. ´보이지 않는´ 감각들의 춤. ´벗어버린´ 나무들. ´ naked eyes and barefoot ´ 육안과 맨발로 서는 땅.


나는 그 계절에 지남철처럼 끌립니다. 쇳가루, 내 뼛가루는 거기 달라붙어 한 번 더 만행 萬行에 나설 차비를 합니다. 그러라고 내어줍니다. 옷을 바르게 개어 힘이 반쯤 빠진 햇살 아래 내어 놓습니다. 다녀올 동안 부탁한다, 그마저 성가시면 놔두고 네 볼일 봐라. 사립을 열어 둘까 하다가 절반쯤 닫고서 산새들이라도 다녀가면 좋지 싶습니다. 어디로 간다, 나는 늘 어디로 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속보에도 그랬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잠기는 장면을 그대로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한 하늘을 머리 위에 얹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늘에도 볕이 나고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붑니다. TV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하늘을 살펴 가며 기상 예보를 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맞춰 준비를 하고 대비도 합니다. 소풍은 미루고 축제는 연기하면서 안전 운전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은 어느 곳에서도 방송해 주지 않습니다. 그 하늘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힘을 잃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의 하늘을 내가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 하늘을 그가 읽어줄 텐데, 우리는 서로 읽지 못하고 읽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충, 대강, 대략 짐작할 뿐입니다. 그 짐작도 멸종 위기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을 것입니다. 멸종으로 치닫지 않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나 하나 보살피는 내 하늘을 살펴주는 사람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이태원´이란 말이 그런 식으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슴에 박히는 말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같은 사람이 많고 세월호 같은 배들, 이태원 같은 골목이 얼마다 더 많을까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11월이 왔다.


내릴 것은 내리고 쌓일 것은 쌓일 것입니다. 눈을 예비하는 계절입니다.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서두르는 나무와 새, 산에 사는 짐승들. 나는 무엇을 마련할지 여기에서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 은행나무 /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 주면


햄버그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닢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 담아 은행 가서 낙엽 통장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 먹어라




11월이 왔다.


낙엽 밟을 일이 발바닥을 거스릅니다. 어떤 것은 밟고 어떤 것은 손에 잡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한창입니다. 단풍이 익어갑니다. 땅이 얹고 사는 하늘은 울긋불긋합니다. 그대 하늘은 울음이 번지고 있습니다. 가을이 타고 있습니다. 속절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별이 조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