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2, 수요일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탄식과 후회는 너무 늦은 일이기에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성호´를 긋는 일입니다. 라디오 음악 방송도 슬픔을 간신히 견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면 둑이 무너지듯 모조리 주저앉을 것 같은 날들입니다. 내 기도는 하찮은 것이지만 이마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조용해졌습니다. 국화꽃을 바치고 고개를 숙이는 현장에 온 국민이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아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좋을지 막막해졌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삼가야 할 때입니다. ´비나 더 내렸으면 좋겠네, 사진 잘 나오게´ 그런 말이 나오려고 하더라도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본심이란 것과 양심이란 것이 차이가 많으면 이럴 때일수록 곤란합니다. 스스로 망할 것입니다.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외신기자들과의 간담회는 실망을 넘어 하나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사람들일까, 싶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참사라고 외치는데 우리 관료는 사고다.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고 항변합니다. 입장이 바뀌었어도 한참 바뀐 것 같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물음이며 누구를 위한 답변인지 헷갈리는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만 이태원 골목에서 희생당했다면 이렇게까지 물어봐 주는 기자들도 없었을 거 같아 아슬아슬하며 슬펐습니다. 주최자도 없었던 행사라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의 시작과 끝이 어디냐고 묻는 미국 기자는 우리를 위해 울리는 종 같았습니다. 정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물은 적 없는 나는 과연 이 나라의 국민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 25:6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기다리는 슬기로운 사람이 주위를 밝혀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이 닫혔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은 기자 간담회였습니다. 그래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쓰라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식으로 문이 닫혔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싶습니다. 그때마다 어떤 백성들이 거기 남겨졌고 모든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슬기로워야 단순할 줄 알고 단순해야 중요한 것들을 챙길 수 있습니다. 정치가 슬기로웠던 적은 있었는지 그래서 사람들의 중요한 것들을 챙겼었는지 때늦은 질문을 적어봅니다.
그 아이를 여섯 살 무렵에 처음 봤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이십 대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그림과 스토리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여전히 꽃에 비가 내리듯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나는 그 아이가 동화를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는 예쁘고 설레는 동화가 그 아이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저 혼자서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상상만 합니다. 그리고 가끔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우연히 좋은 스토리가 내게 떠오르거든 그것을 그 아이에게 부탁해서 날개를 달아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밝았고 중학교에서는 가정법에 대해서 물었었고 고등학교에 갈 무렵에는 친구 관계로 고민을 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3년 전에 통화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그때도 스토리를 항상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네 주머니는 크고 좋으니까 거기에 잘 담아보면서 지내라는 말,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그렸다는 그림을 오늘 아침에는 전하고 싶습니다.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현주´, 참 예쁜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