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8-1

연기설

by 강물처럼

2022,1104, 금요일


눈만 뜨면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 책벌레가 아니라, 진짜 기어 다니는 책벌레와 마주쳤습니다. 오래된 책에 더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이 먼지다듬이라고 되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해충이 아니더라도 책 위를 살살 기어 다니는 것을 가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엄지로 살짝 눌러줄까 하다가 새벽부터 그러는 것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무책임합니다. 다른 식구들도 있고 무성생식을 하는 먼지다듬이는 개체수가 빨리 증가한다고 합니다. 오늘 처음 만난 것도 아닌데 오늘은 망설였습니다. 연기 緣起라는 말이 생각났거든요. 그 말은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거 불교 아니냐,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보다 먼지다듬이를 본 순간 먼저 떠오르는 말은 업 業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 ´우리- 먼지다듬이와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먼지다듬이가 되어 ´지금- 어떤 사람이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고 자기는 그것도 모른 채 나들이를 나왔다가 길을 헤매고 있는 상태´에 처한 입장에서는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 연기 緣起란 무엇인가? 연 緣하여 일어남 起이다. 연한다는 것은, 어떤 조건에 기대어 있음이다. 따라서 연기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반대로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혹은 사라짐이다. 《중아함경》에 있는 유명한 문구가 그것을 요약해 준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 이진경, 불교를 철학한다 17p.




나는 그것을 내버려 두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찔립니다. 털어냈습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이 보이는 밖으로 탁탁 두 번 털었습니다. 내가 맴을 돌고 있는 이 연기 緣起를 실감합니다. 어떤 조건을 또 만들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나는 조건을 만들게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요. 하나만 더 같은 책에 나온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서구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근대의 칸트, 현대의 후설도 무상한 것 저편의 확고하고 변함없는 것을 찾고자 했다. 진리란 이 가변적이고 무상한 덧없는 세계의 저편에 있는 지고한 어떤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것에 ´본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저런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연기적 사유´는 이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무상함의 저편을 찾는 게 아니라, 무상함을 보는 것이 지혜임을 설하고,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음을 가르친다. 심지어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가변적 세계의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다. - 같은 책 18p.




그러니까 우리 - 먼지다듬이와 나-는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가, 그 조건에서 하나의 인연을 풀거나 맺고(이 지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맺는 것과 푸는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끝이 시작이라는 말을 이해할 듯합니다) 다른 조건으로 옮겨갔습니다. 슬프거나 엉뚱하더라도 조건이 옮겨지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말은 하나의 조건이니까요. 다만 우리가 좋은 인연 만나게 해달라고 비는 것처럼 내 조건이 꽃이 되거나 누군가의 꽃밭이 될 수 있기를 인간적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 하고 절에서는 자비심이 되고자 애쓰는 것 같습니다. 먼지다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라는 조건에서 그것이 창밖으로 내던져졌지, 결코 먼지다듬이가 악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먼지다듬이를 털어낸 내가 나빴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덜 현명했을 수는 있습니다. 더 현명했더라면 무수히 많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남습니다. 계속 남아서 다음 연기를 준비합니다. 나는 먼지다듬이를 그렇게 버리고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내가 아는 방법이었냐는 물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서 바람 아니고서는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아침에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꺼낸 듯합니다. 친구 교회 신자분들에게 11월 한 달, 아침 묵상이 전달된다고 들었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지난봄에 뵙고 다시 뵈니 이것도 하나의 조건의 탄생 아닌가 싶습니다. 더 깊은 기도가 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면 춤이라도 추겠습니다.




방금 우리 집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일찍 등교를 했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공부를 영 게을리해서 그렇지 않아도 말 걸기 싫은 판에 오늘은 졸업 사진 찍는다고 6시 반부터 일어나 수선을 떨다 나갔습니다. 아이들 일기를 태어난 날부터 쓰고 있는데 어제 일기에는 온통 불만투성이였습니다. 내가 어서 집을 나가야겠다고도 썼습니다. 말하자면 물밑은 이렇게 온갖 것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내 연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전에는 감정 하나를 추스르지 못한 것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한 꼴이 되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출발한 아이가 오늘 하루 어떤 기분일지, 나도 모르게 거기에 하나의 조건을 달아서 내보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또 이렇게 미안한 생각을 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그것이 제 슬로건입니다.


아침 먹고 아이한테 문자 메시지 하나 날려야겠습니다.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다가 와라, 너무 늦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