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10, 목요일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른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 메일함에도 읽지 않은 수많은 메일이 쌓여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은 항상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스팸메일이라고 하는 것들,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시간이 들고 귀찮습니다. 거름도 되지 못하는 그것들을 방치합니다. 만약 전자 메일도 썩는다고 한다면 그 악취는 어땠을까요.
딴에는 좋은 일 한답시고 부지런을 떨지만 불편한 사람에게는 불편할 뿐입니다. 성가셔도 관계 때문에 ´그만´ 보내라는 말을 못 하는 그 마음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도 그런 적 있으니까요. 그래서 11월은 보고 배울 것이 많습니다. 거리에 낙엽이 쌓이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해마다 11월이면 잎을 떨구고 나목이 될 줄 알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처럼 늙어서야 겨우 늙는 사람이 아니라 해마다 늙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세상은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가 다니는 송학동 성당은 나이 드신 신자분들이 많습니다. 그 까닭에 장례 미사가 자주 있습니다. 사람이 종교를 가장 필요로 할 때가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처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며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종소리가 들린다면 누군가 나를 위해 손을 모으고 있다면 그만한 위로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 순간 알 수 있습니다. 내 나중을, 내가 없이도 나를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는 일이 나를 긴장시킵니다. 저는 긴장이 싫습니다. 초조하고 침이 마르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침 7시 반에 있을 미사가 새벽 2시에 두근대기 시작합니다. 처음 미사에 복사를 섰던 새벽이 그랬습니다. 늦으면 안 되니까, 자꾸 일어나서 동그란 벽시계를 올려다봤습니다. 온 식구가 한 데 모여 자는데 혼자서 시간을 세었습니다. 나에게도 정체성이란 것이 있다면 아마 그 친구일 것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것. 그리고 불편을 읽는 불편.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루카 17:25
그러나 나는 고난을 겪은 적도 없고 배척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쓸쓸한 것은 남습니다. 사람들과 있으면서 사람들을 떠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속에서 어떡하든 지내셨는데 말입니다. 겨우 ´외딴곳´에 기도하러 잠시 들렀을 뿐 늘 사람들 곁에 머무셨습니다. 마지막에도 사람들에 둘러싸여 비웃음을 사고 누군가는 침을 뱉었습니다. 비난과 조롱, 저주가 날아들었습니다. 나목 裸木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이며 십자가는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11월은 십자가를 닮았습니다. 내가 그 하나와 하나를 잇습니다. 내 기도는 거기 어디를 잇는 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를 묶었으면 합니다. 죽게 하소서.
내 시선이 죽게 하고 내 갈망이 죽어 떨어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거름도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래 십자가에 걸린 채로 풍장 風葬 하게 하소서. 바람에 다 씻겨 허공이 되게 하고 마침내 풍성하게 하소서. 시끄럽지 않게 하소서. 아무 말이 없게 하시고 울게 하소서*. 말하라 하지 마시고 침묵하게 하소서*
¶ 부끄러워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돈 욕심뿐만이 아니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도 이제는 더 이상 패륜이 아니고 그저 일상일 뿐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들을 듣게 되면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휴거(휴먼시아,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주택에서 사는 거지)´ ´빌거(빌라에서 사는 거지)´ ´임거(임대아파트에서 사는 거지)´ ´월거지(월셋집에서 사는 거지)´ ´전거지(전셋집에서 사는 거지)´ ´엘사(LH,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주택에서 사는 사람)´ ´이백충(한 달에 200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사는 벌레 같은 사람)´ 등등. 이와 같은 끔찍한 차별주의적인 표현들이 초,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최근에 몇 번이나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직접 보고 들었다. 자가 주택이 없고 소득이 적은 사람을 ´거지´나 심지어 ´벌레´에 비유하면서 습관적으로 멸시하는 것을. 아이들이 이제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배우고 익히며 내면화하는 것이다.
- 박노자, 당신이 몰랐던 K 112p.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소련 사람 박노자는 2001년에 우리나라에 귀화했습니다. 그의 시선은 명철하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따뜻한 사람이 건네는 것들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보듬어 줍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 상처를 알아봅니다. 이 순간에 저는 망설입니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건넬까. 그것은 침묵인가 단절인가 아니면 외면인가. 따뜻한 곳에 짐승이든 사람이든 깃듭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순간도 가을을 담은 적 없는 마음이 그저 가을을 즐길 줄만 알았습니다. 세월을 그렇게 지내온 듯합니다. 어쩌면 세월만 지내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얼마쯤 받아 적어야 편해질까. 편해질 것을 놓지 못하는 나는 누구의 창조물입니까. 평화가, 평화가 이 땅에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 세상을 떠난 이들과 그들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 나를 울게 하소서 - 헨델이 만든 오페라 <리날도>의 소프라노 아리아.
* 말하라 하지 말고 - 슈베르트의 가곡, <미뇽의 노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