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9, 수요일
잠시 추억 여행 떠나겠습니다.
¶ 그 후 당신은 보름간이나 제게 전화를 주지 않으셨어요.
저녁마다 찬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길에 그곳을 지났지만, 저는 잠깐 머물러 살필 뿐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비운 그사이라도 당신이 전화를 걸면 안 되겠기에 말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전화 옆에 붙어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했습니다. 목욕을 할 때면 물소리가 크지 않게 숨을 죽였습니다. 청소를 할 때나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에 나가 섰을 때일지라도 전화벨 소리가 잘 들리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간혹 전화가 불통인가 수화기를 들어 확인해 보기도 했지요. 전화는 불통이기나 한 것처럼 계속 울릴 줄 몰랐으니까요.
- 김채원, 겨울의 환 幻 가운데.
난로가 생각났습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아랫목이 있었습니다. 항상 따뜻한 자리, 이불이 깔려 있고 아직 밖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밥 한 공기를 담고 있던 자리였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그 아랫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사는 일에 한기가 들면 그래서 옷을 껴입어도 추울 때면 내게 아랫목이 없다는 답을 대신 적어보곤 했습니다. 그것이 콩기름이었다고 그러던 것을 어디에선가 봤습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한지장판을 바닥에 까는 지금이지만 예전에는 외갓집에나 가야 한지를 겹겹으로 바른 방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콩기름을 발랐다고 하니까 가난하고 촌스럽게 보였던 그 방이 살뜰하게 다가왔습니다. 색이 바랜 것도 역사 같았습니다. 사람이 그 위에서 잠을 자고 몸을 데우고, 신산스러운 시절에 온돌방, 아랫목이라도 있어서 외할아버지가 당당하셨던 거 같습니다. 탕탕, 곰방대를 털어내던 모습이 상상인지 기억인지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는 아랫목이 없었습니다. 보일러였습니다. 하얀 플라스틱 통에 간간이 물을 붓던 아버지는 확실히 생각납니다. 대신에 난로가 있었습니다. 식당에는 다들 난로를 놓던 시절입니다. 아랫목이 없는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TV를 보고 심부름을 하고 또 TV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난로에 연통이 달리고 연탄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날은 금방 추워졌습니다. 우리는 그 옆을 지켰습니다.
저녁 일을 마치고 문득 책꽂이에서 1989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꺼냈습니다. 이상하게 제목이 잊히지 않는 소설, 김채원의 겨울의 환 幻을 펼쳤습니다. 어떻게 시작하더라, 다만 그뿐이었는데 천천히 마지막 문장까지 읽었습니다. ´그때 일어나서 들창을 열고 눈의 세계를 아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 저는 그 감정이 신기합니다. 지금 읽는 것들은 왜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호르몬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꾼다고 그러면 참 멋쩍습니다. 무엇일까요. 젊어서는 왜 고마운 줄, 우연인 줄 몰랐을까요. 46년생 작가가 89년 쓴 수상 소감을 읽으면서 ´그래도´ 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이 용케도 따뜻했네, 싶었습니다. 내가 글이 없는 이유는 아랫목일까, 난로일까.
그리고 전화가 하염없이 기다려졌습니다. 앞에 말한 전화 기다렸던 적 있으시지요, 그런 전화했던 적 있으실 겁니다. 없었다면 그것도 참 멋쩍은 일일 것 같습니다. 삶은 한 번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러셨습니까. 휴대폰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정화수´ 같은 전화를 기다립니다. 올까, 올까, 올까 싶어 나를 태우는 그 소식 말입니다. 그 목소리는 아직 젊고 낭랑하고 우렁차며 똑똑하고 곱고 예쁠까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해 줄 수 없다면 옛날이라도 잘 전해주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요. 아이들도 돈이 좋다고 그러는데 책은 너무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고 그러는데 내게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가끔 ´수동태´를 깨우쳤던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알파벳 B하고 V가 그렇게 닮은 소리를 낼 줄 꿈에도 몰랐었다고 그래서 ´맨붕´이었던 중학교 첫 영어 시간을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남의 이야기처럼 듣습니다. 풍족한 것이 부럽지 않습니다. 네가 모르는 내 이야기, 전화, 겨울, 연애, 스페인의 묵시아 해변에서 묘지를 향해 기도하던, 시인이 되지 못한, 선운사 동구에 오래 앉았던, 묵묵했던, 그런 그런 삶,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폴 발레리처럼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