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44-1

책 선물

by 강물처럼

2022,1111, 금요일

오늘은 좀 시간이 걸립니다. 20분째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심심하지도 조급해지는 것도 없습니다. 꼬마들하고 이야기할 때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눈이 커지거든요. 여기 있는 책들만 해도 대충 1억 원은 넘겠는데. 그런 말 하면 눈에 힘이 확 들어갑니다. 책 때문에 그럴까요, 돈 때문에 그럴까요.


내가 처음 선물 받은 책은 ´빵나무´, 그 책은 수녀님이 주셨습니다. 4학년이었습니다. 돈은 좋습니다. 돈으로 군것질을 할 때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막연히 좋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도 싫지는 않았습니다. 50원을 나눠서 만화책도 보고 오뎅 국물이며 뽀빠이 한 가마씩 ( 한 봉지를 애들끼리는 한 가마라고 불렀습니다) 손에 쥐고서 성당에 가고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봉헌 봉투에 넣었습니다. 정성스런 이 예물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항상 ´수덕이´가 등장합니다. 저에게 돈은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줬던 친구입니다. 수덕이 봉헌 봉투를 보고서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렇게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게´ 10원으로 쭉 찍힌 도장을 봤던가( 그 시절 누르스름한 봉헌 봉투를 기억하시는지요. 이름과 세례명이 적혀 있고 주마다 봉헌 액수가 적혀서 거기 조그만 도장이 쿡 찍혔습니다. 물론 각 가정별로, 그러니까 온 식구의 봉투가 한 데 모여 있어서 엄마, 아빠는 가끔씩 아이가 봉헌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했습니다)




제가 본 것은 수덕이의 ´과소비´가 아니라, ´자유´였습니다. 너는 이래도 되는구나! 그래도 밝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나는 눈치를 보느라 나란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보면 내 봉헌 봉투야말로 물결치면서 자유롭게 보였을 것입니다. 경건하게 울려 퍼지는 찬송처럼 높고 낮게 50원짜리, 30원, 어떤 날은 10원을 봉투에 넣고서 이래도 되나, 걸리면 어떡하지 싶어 짭조름한 입맛을 다셨습니다. 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점방도 있고 오락실도 있고 만홧가게도 있으며 더 좋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줄은 알면서도 그렇게는 못했습니다. 하나, 빠뜨리면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려도 머리를 씁니다. 특히 ´돈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수덕이처럼 봉헌을 한다면 내 봉헌금은 ´10원´으로 줄어들고 말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눈치 보는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자유라고 불릴 성질의 것인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내 풍토는 그랬습니다.




요즘 비싸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눈치채고 있습니다. 전파되니까요. 생각과 말과 행동은 무엇을 매개로 그렇게 잘 옮겨 다닐까요. 땅 몸살도 나지 않고 옮겨 심어진 데서 쑥쑥 자랍니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던 옛 말씀이 거울처럼 반짝입니다. 책값도 무시하지 못하겠습니다. 중고 서적을 더 자주 찾습니다. 전자책은 아직 구매 욕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데 그래서 부자인 거 같아. ´


2억 원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본 것은 결코 아닌데 책을 많이 샀습니다. 책 살 때 기분이 좋아지는 증상이 있습니다. 책을 사서 선물한 적도 많습니다. 항상 그 선물이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마땅하게 줄 만한 것도 없고 뭔가를 사지도 못할 때는 책을 골랐습니다. 그만큼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을 겁니다. 책 선물을 하면서 가장 환하게 웃었던 얼굴이 누구였는지는 말 못 하겠습니다. 대신 그 아이가 했던 말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항상 책을 선물해 주는 친구야. ´




살면서, 사느라고 책 한 권 건네지 못한 친구들도 많습니다. 아침 묵상을 하면서 앞으로 그 친구들에게 책 선물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는 그렇게 가난해질까 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통쾌할 것도 같습니다. 애들 엄마가 요새 읽는 책이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미국 의사 아저씨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가 쓴 자기 마지막 이야기를 어디쯤 읽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이아 없는 그 손으로 페이지 하나씩 넘기는 것을 그려봅니다. 거기 어디 내가 밑줄 그어놓은 데에서는 바람이 불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깊은숨이 회오리치면서 몸속 곳곳을 후벼댈 것입니다. 슬픔을 선물하는 나는 별로 좋은 지아비는 아닐 것입니다. 대신 이 가을이 다시 올 수 없는 그 가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부스러지는 햇살같이 바라보일 때가 찾아오면, 그것으로 반지를 삼았으면 합니다. 알뜰하고 살뜰하게 영롱하게 그러면서 많아 아쉬워하길 바랍니다. 삶이라는 페이지에 하나의 어휘로 머무는 자신을 찾았으면 합니다. 그 페이지를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마침 그 책을 읽다가 잠시 내려놓으셨습니다. When Breath becomes air. 숨결이 바람입니다. 바람이 숨결입니다.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자유롭습니다.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