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월요일
노래 하나 부르고 싶습니다. 결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편안하게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몇 곡 있습니다.
그중에 이문세의 ´옛사랑´,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두 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서른이 넘고 마흔, 마흔을 겨우 넘어가는 고개에서는 - 그것이 지금은 고개였는지도 희미해졌지만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렸습니다. 일이 끝나고 늦은 밤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 노래가 친구였습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늘 배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노래도 오랜만에 부르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월요일이고 아침이니까, 맑게 가겠습니다.
´옛사랑´은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랫말도 가락도 정서도 내게 편안한 옷 같았습니다. 어디를 입고 가도 어느 때에 입어도 ´나를´ 표현해 주는 옷같이 살가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천천히 이를 닦는데 그 노래가 흘렀습니다. 이마에서 흐르다가 눈으로 쏟아졌다가 콧바람으로 그리고 목울대를 흔들면서 양 어깨로 번졌습니다. 입에는 치약 거품이 불어나는데 가슴이 차올랐습니다. 날이 추워진 것을 알겠습니다. 그 노래는 북풍을 올라타고 남으로 나를 찾아다니니까요. 내가 무장 해제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내버려두다. 내버려둬, 내버려두면, 내버려두어서는, 내버려두니, 내버려둬도, 내버려두다니. 살아온 햇수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내버려두는´ 것을 노래합니다. 내 감정 感情이 나를 풀이합니다. 내 세월을 감정 鑑定 합니다. 얼마짜리 내가 됩니다. 싸구려가 되더라도 나는 옛사랑을 끝까지 부릅니다. 곧 눈이 내릴 것입니다. 내 눈에도 입에도 무릎에도 그리고 고무줄 치기를 하던 6학년 누나들이 후려갈겼던 내 등짝에도 하얀 눈이 나릴 것입니다. 도망가면서 웃고 뒤쫓으면서 웃는 옛날에 하얀 꽃이 피어납니다.
<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
견진 성사*를 받지 않을까 합니다. 5년 만에 있는 견진이니까 그만큼 소중한 기회입니다. 저한테는 50년을 기다리고 있는 견진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나서지 않습니다. 싫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중학생이었을 때, 친구들이 다들 견진 성사를 받겠다고 했을 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받아라.´ 그 말 하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한테 받았던 가장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견진 때가 찾아오면 늘 저는 어렸습니다. 결코 어른이 되지 못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해가 지는 광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별을 거니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가는 가루가 받쳐질 때 그때에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많이 어쭙잖습니다. 그래서 편해지고 싶습니다. 그때가 오지 않더라도 기다리고 싶습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없다면, 그때 간절하게 불안해할 것입니다. 간절하게 고독해 하고 슬퍼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견진 성사 -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 가운데 하나. 세례 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성숙시키고 나아가 자기 신앙을 증언하게 하는 성사.
견진 성사는 주교 또는 주교의 위임을 받은 사제가 집전하며, 견진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세례 받은 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