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16, 수요일
송학동 성당 신자들과 아침 묵상으로 소통한 지 3년이 됐습니다. 2019년 11월 16일에 머뭇거리다가 아침 묵상을 띄웠습니다. 전임 유종환 마태오 신부님께서 소통의 장으로 만든 카톡 단체방이었습니다. 밖에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가 시냇물 흐르듯이 들려옵니다. 어둠 속에서 늦가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 ´00님이 나가셨습니다. ´라는 문장이 줄을 이었습니다. 저 또한 단체 카톡에 거부감이 있던 터라 물끄러미 방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참이었습니다. 나가면 그만인데, 싶었습니다. 옛날부터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불리하고 가난하고 부모가 헤어졌거나 부모 중에 한 사람이라도 돌아가셨거나 그래서 표정이 쓸쓸한 얘들, 공부를 정말 못하거나 ´주류´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존재감 없는 친구들이 차라리 편했습니다. 감히 그들의 편이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유리한 쪽은 싫었습니다. ´유약하다´는 말을 우리 딸보다 더 어렸을 적에 들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좋든 싫든 늘 눈치를 보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유약하다고 그러는구나. 그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유약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같습니다. 말을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이 자주 닫혔고, 행동을 요구 당하면 머뭇거렸습니다. 싹싹 빌어야 할 것 같으면 가만히 몸을 내줬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습니다. 유약한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요. 몇 번인가 마음이 열렸던 것도 기억납니다. 짓이 나면 나도 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하여튼 그날도 내 유약함이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신부님도 곧 은퇴하실 텐데 그때 나도 나가야지 그러면서 툭하고 묵상 글을 게시했습니다. 따로 신부님과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송학동 성당 신자들과 묵상을 나누기 시작한 이후로 그동안 없었던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소망 같은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2017년 무렵부터 ´우리´ 아픈 사람들끼리 응원하자는 뜻에서 적었던 스토리가 비로소 방향을 잡았던 순간입니다. 그전에는 물 위에 떠있는 배였을 뿐이었는데 그때부터는 사람을 싣고 목적지를 항해하는 배가 되었습니다. 복음 없이 떠들다가 복음을 나아갈 방향으로 삼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실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은 쇠도끼인데, 날마다 어디에서 금도끼, 은도끼가 나를 돕는가.
글이 좋고 나쁘고는 잘 모릅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그것만 보여서 가려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의 글은 안 읽는다는 ´작가들´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듯해서 더 늦기 전에 나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력이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볼 만한 것만 보면 무엇인가를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시력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밤에는 꼭 안경이 있어야 운전을 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읽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즐겁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늦바람이 났습니다. 가끔 언급하는 숫자, 5천 몇 개가 됐다는 그 숫자가 지금은 5,276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만큼 써보니까, 남의 글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잘 쓰면 잘 쓰는 대로 대단하고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떨림이 보입니다. 시력이 나빠졌지만 올바른 것을 위해서 그만한 희생은 얼마든지 나의 몫이 되어도 좋습니다. 두꺼운 편에 속하는 책이 보통 300페이지가 됩니다. 글 한 편을 한 페이지로 계산을 하더라도 5276 나누기 300은 17.5866666667. 17권이 됩니다.
´나가고 싶은 순간들´이 인생에는 많습니다. 3년 전 그때 카톡 방을 나갔어도 삶은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아침 묵상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주 중요한 현상 하나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어제는 살짝 ´감정을 모방하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는 ´나´와 얼마나 비슷한 사람일까요. 그 둘은 정말 똑같은 사람인가 묻고 싶습니다. 내 오래된 친구들도 그들이 알고 싶은 ´나를´ 알고 있었을 뿐이지, 정작 그게 ´나야´ 싶은 나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은 필요하고 이야기는 힘이 있습니다. 전달이 되면 다르게 인식이 되니까요. 언제 대한민국에서 자기의 감정이나 소망, 감상이나 감수성, 그게 아니더라도 이성이나 작품, 영화나 연극, 책에 나오는 문장을 조곤조곤히 속삭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던가요. 그럴 시간도 여유도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고서 각자도생 各自圖生 합니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는 아내마저도 아침 묵상을 통해서 저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옛날 전쟁터에 쓰였던 지도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점령한 땅과 아직 점령하지 못한 땅, 안다는 것은 온유한 점령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알고서 행하면 지나침이 없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나를 알리고 그럼으로써 배웠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사람들을 배우고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듬해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아침에 마태오 신부님은 카톡 방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오늘은 그 메시지로 인사를 갈음하겠습니다. 유종환 신부님의 건강과 행복을 함께 기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교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1년 5개월 동안 부족한 이 사제를 도와 송학동 본당을 위해 그 소임을 다해주었습니다. 모든 교우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앞으로 나는 원로 사제에 걸맞게 더욱더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실천하며 섬김의 삶을 사는 사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절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합니다.
- 부족한 사제 유종환 마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