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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Nov 18. 2022

기도 50-1

맛이 사라졌어

2022, 1118, 금요일



수북이 쌓인 낙엽은 그대로 영혼처럼 울었습니다. 내 울음소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 같은 음역과 물결을 지녔으면 합니다. 수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르지 않고 그런 소리는 나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바삭거리는 꿈을 꿉니다. 부서져도 하나 괴롭지 않은 늦가을, 11월에는 떠난 것들을 곰개 나루에서 뿌립니다. 금강이 빛으로 흔들리며 흐르는 것을 내내 아껴 바라봅니다. 잎새가 자꾸 떠나가고 나도 벚나무도 가을도 전라도도 옷을 벗고 있습니다. 누가 더 말랐는지 이상한 시합을 합니다. 서로의 영혼을 햇살이 비칩니다. 따뜻합니다.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요즘 밥을 잘 먹고 있습니다.


뜻밖의 횡재로 쓸쓸할 계절이 제법 쏠쏠한 재미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김치가 한 통 생겼습니다. 김장철이라 막 담근 김치를 맛볼 수 있는 날들입니다. 3년 전에, 그러니까 어머니가 뇌경색을 앓기 전에 마지막인 줄 모르고 담갔던 김치가 어쩌다가 내 밥상에 차려졌습니다. 그때 처갓집에 보냈던 김치가 김치냉장고 가장 밑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장모님도 혼자 계시고 몸이 성한 편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 있을 줄 몰랐던 것입니다. 김장 담을 채비를 하느라 우연히 거기를 열어본 아내가 그 김치를 발견하고 가져온 것입니다.




이제 못 먹을 줄 알았던 김치를 다시 맛보고 있습니다. 멸종되었던 크낙새*가 창가에 날아와 앉는다면 그때 나는 어떨까요.


얼마나 남은 줄 모르니까 소중한 줄 모릅니다. 김치 맛이 그대로입니다. 어머니 말대로 그 김치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맛이 있습니다. 여태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바람이었습니다. 어머니 김치에는 12월의 찬바람 맛이 익어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추운 날까지 배추를 시달리게 했습니다. 덕분에 같이 김장을 담는 아주머니들도 며느리도 더 추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언 손을 불에 쬐어가며 물에 담가가며 배추 포기마다 양념을 정성스럽게 새겼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책은 김치였습니다. 좋은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라집니다. 사라지지 않고 사람을 밭으로 삼아 거기에서 배추를 키워냅니다. 그것이 유산이고 발전이며 선행 善行입니다.




대추나무에 염소를 매어 놓아 나무를 흔들어 괴롭히면 나무가 긴장하여 열매를 가능한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딴에는 필사의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한 줄 가르침이 그대로 어머니의 손을 통해서 양식으로, 그 양식을 먹고 살아온 나로, 내가 부양하는 내 아이들에게로, 세상으로 번져갑니다.


귀하게 지내는 삶은 절실함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릅니다. 어제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볶음밥´ 한 그릇 얻어먹었던 그 맛은 절대 잊을 수 없다며 사람 좋게 웃는 우진이 아빠 말이 맛있었습니다. 그러게,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맛´이 사라졌어. 집을 나갔어.


얘들이 그 맛은 모를 거라며, 우리는 옛날에 맛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냈습니다. 사소한 것들, 지금 아이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시시한 것들이 줄줄 이어졌습니다.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요, 라는 말이 눈앞에서 가물거렸습니다.


그러게, 그러게 그러고 말았지만 그 답만큼 허허로운 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없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때 아니면 언제 또 먹을 줄 알아요, 우진이 아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6




멀리 나가지 않고 안에서 살필 수 있으면 그것이 좋습니다. 내 몸도 하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거기 많은 것들이 모여 삽니다.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배수와 하수 시설도 갖춰고 숨이 굴뚝에서처럼 뿜어져 나옵니다. 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명도 환하고 모든 것이 자율 자동 시스템입니다. 그 집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요. 청소하느라, TV 보느라, 그리고 또 무엇입니까. 내가 쓸쓸한 것은 잘 알겠는데 집이 쓸쓸해하는 것은 잘 모릅니다. 내 집이 쓸쓸해하면 나도 쓸쓸합니다. 집이 나니까요.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까.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딱따구리 중 하나로 천연기념물 197호, 2017년 환경부는 크낙새가 절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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