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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Nov 19. 2022

기도 51-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022, 1119, 토요일


그림을 잘 읽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물론 음악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이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야 해요. 누가 그처럼 사랑할까요. 현 絃을, 쓸쓸함을, 클라라를. 말입니다. 이런 말들로 거리를 채우고 싶습니다. 그러면 사람들 발에 채고 누군가의 머리에 내리고 어떤 이는 목덜미에 떨어진 줄 모르고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대로 다른 분장 없이 연극을 하면 어떨까, 무대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몸짓을 창조합니다. 한 번으로 사라지는 대사를, 다시 옮기지 못하는 말을 무대에 뿌립니다. ´안녕하신가요, 나의 여왕님´ (Wie bist du, meine Konigin)*




가을이니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있다면 내어주기로 합니다. 실을 뽑아 옷을 짓듯이 내 단어들을 던져서 저 물에 파장을 일으켜 건너편에 닿았다가, 닿았다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수줍음으로 물밑으로 숨어드는 연인들을 그려봅니다. 그대는 노오란 은행잎이 되었던가요. 붉은 초록을 아껴서 보듬어 키웠던 시절에 내내 고맙습니다. 달마 스님도 형형합니다. 선 굵은 절벽으로 그린 그에게서 합장한 여인이 보입니다. 널따란 언덕이 등처럼, 앞에 두 손이 보이지 않는 그 손이 달마를 달마로 비춥니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방금 찍은 사진을* 보고 따뜻한 것이 없어서 혼났습니다. 그림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고 마음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 사진이 불편해서 달마상을 꺼냈습니다. 그를 내어주기로 합니다. 이게 그림이냐, 사람이냐. 하나만 묻기로 했습니다.




¶ 그러나 그의 눈빛을 보라. 달마는 한편으로 이 모두가 역시 허상 許像이라는 듯이 진정 거짓말처럼 깊고 고요한 눈매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저 들끓는 역동성과 고요한 침잠 沈潛이 한 화면 위에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과연 선 禪일까? 어떠한 집착도 거부하는 것이 선이라고 들었다. 집착이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어떠한 집착도 거부한다"라는 말이 또다시 집착의 대상이 되는 순간 선은 그것을 거부한다.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13p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시더니 어머니는 줄곧 일을 하셨습니다. 아마 울면서 일하셨을 겁니다. 아니면 일하면서 우셨을 것도 같습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그것이 가톨릭 성가였든 이미자의 노랫말이었든 하나의 기도가 되었을 수도 있으며 단순히 팔자타령이었을 것도 같습니다. 계절이 무심히 흐르는 것을 고마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고 있는 세월의 등을 마저 떠미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내고 나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 계절에 자주 보았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되잖아, 그런 말이 어머니는 달래지 못합니다. 시집도 장가가는 일도 없다는 말을 어머니는 믿습니다.


나는 전생을 믿을까 어쩔까 궁리하다가 그때 땅바닥에 무언가 그렸습니다. 별이었을까요, 새였을까요. 달마였다면 신기했을 것입니다. 내 전생은 그렇게 끊어졌고 나는 이생에 훌쩍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혼자서 살아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침 묵상을 6시 42분에 적었는데 언제 날리면 좋을까 하늘을 봅니다. 어둡습니다. 하지만 7시 15분에는 산청에 갑니다. 운이 좋아서 오늘은 지리산 둘레길 7번째 길을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부르르 몸을 떨다가 겨우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가고 싶습니다. 낙엽을 밟으면서 땅이 무르고 물이 무르고 시절이 물러지는 연극을 보고자 합니다. 실컷 물렁해진 빛깔들이 마지막 물을 바람에 날리고 있을 풍경화, 그림을 잘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 페이지를 어디에다 꽂아둘까요.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그 길에서 보냅니다. 살아서 좋은 것들을 보냅니다. 죽어서도 웃는 표정들을 얼마 주고 사볼까 싶습니다. 우리는 공존합니다. 물이 맑으면 하늘이 비칩니다. 거기에 긴 나뭇가지가 다리처럼 놓였습니다. 누가 저 다리를 건널까, 기다렸다가 일어서겠습니다. 그저 좋은 날입니다.


* 브람스 가곡 가운데 한 곡


* 김건희 여사, 캄보디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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