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시골 버스 / 손택수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
기사 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
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
손주 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
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싱글벙글 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슬쩍슬쩍 간질이는 시골 버스
멈춘 자리가 곧 휴게소다
그러니, 한나절 내내 기다리던 버스가
그냥 지나쳐 간다 하더라도
먼지 폴폴 날리며 한참을 지나쳤다 투덜투덜
다시 후진해 온다 하더라도
정류소 팻말도 없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팔을 들어 올린 나요, 너무 불평을 하진 말자
가지를 번쩍 들어 올린 포플러와 내가
버스 기사의 노곤한 눈에는 잠시나마
한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니
누가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날에는 내 손으로 시골 버스를 한 대 장만해서 몰고 다니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설계를 해본다.
그날부터 나는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사장이 되어 본 적 없는 꿈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는 것이다.
직원도 나 혼자, 회사는 버스, 직장은 무주나 장수, 멀어서 사람들이 잊어버린 골짜기 구비구비를 바람으로 다니고 싶다.
손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나이가 예순쯤 들어서는 햇볕이 심심하게 드는 곳에서 이발을 하고 싶다.
내 머리를 깎는 일 말고 사람들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으로 머물 때 보기 좋은 것들이 있다고 나를 말리겠지만 그거야 내 맘 아닌가.
지금까지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피곤했는데 그림이야 그려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머리도 깎아주고 돈도 깎아주고 그러면 살면서 나도 모르고 지었던 숨은 '때'가 보이기도 할 것 같아서 편하다.
다 쓴 '톱밥'처럼 버리기에는 아깝고 어딘가 꼭 가져다 쓰면 느낌이 좋은 곡선을 이루는 곳에 머물고 싶다.
먼지처럼 폴폴 날리며 쓸모없던 것이 누군가의 쓸모가 되어 역할이 되고 풍경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의외의 것들이 커피 맛을 좋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기가 어디든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내가 늙어서도 꿈을 꾸는 곳이라면 '후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앞으로만 달리는 영화 같은 곳에서 딱 한 번 주인공만 쓸 수 있는 뒷걸음치기는 감동이고 마법일 테지.
시골이어서, 나이 들어서 , 그대여서.
팻말도 없는 길가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서, 그렇게 있어줘서. 그대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