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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11. 2022

아빠가 쓰는 편지

6학년 졸업

전**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마 놀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편지를 읽어내리실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저도 누군가의 편지를 받아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늘 강이가 종업식을 하는 날에는 편지 한 통을 손에 쥐어서 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린이집 다니던 4살부터 그랬으니까 얼추 10년이 되어 갑니다. 별다른 선물은 아니더라도 한 해 동안 고마웠던 것이 많았다는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은 소소한 생각에서 시작했던 일입니다.

사실 지금 선생님 성함도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가 깨면 다시 확인해야 할 입장입니다. 이렇듯 부모로 살면서 무심한 것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될까, 그런 생각 하면 부끄러운 것이 자꾸 얼굴을 내밀고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아 제 속이 다 창피합니다.

선생님, 지난 1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강이는 명랑하게 웃으면서 6학년을 잘 다녔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월 첫 주에 졸업이니까 한 달 채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초등학교 시절을 만끽하고 곱게 단장할 시기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부반장 공약으로 내놓았던 '보물 찾기'를 잘 마쳤다며 흐뭇해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너는 공약을 지킬 줄 아는구나, 자기 용돈으로 '다이소'에 가서 보물을 마련했다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이에게 솔솔 불어주고 있습니다. 가끔 바람이 거세지는 것처럼 저 또한 그럴 때가 있어서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아빠 같은 구석이 있어. 그 말이 저는 칭찬으로 들렸습니다.

아빠가 했던 말하고 똑같은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아빠하고 서로 모를 텐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강이가 해줬던 말입니다.

저는 변변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까지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편지를 써보고 싶습니다. 중간 조금 더 지나온 듯합니다.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 유익합니다. 가르치는 분들의 수고로움을 새겨볼 좋은 기회인 듯합니다. 더불어 아이에게도 좋은 습관을 보이는 것 같아 이익입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잃으면 어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싶습니다.

사랑이 쉬운 일인가.

저는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늘 계단을 딛고 오르는 일을 합니다. 폴짝 건너뛰지 않고 한 번에 한 칸이 저에게는 좋은 그림입니다. 강이는 어떤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됨 안에는 6학년 1년 동안 돌봐주신 선생님의 솜씨와 그림자가 같이 깃들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림자를 잘 그려야 입체감이 살고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모든 것들을 아껴서 그릴 줄 아는 그림, 사람을 응원하고자 합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님이지만, 강이 6학년 때 선생님을, 저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강이는 좋겠습니다.

두고두고 선생님을 아는 사람으로, 선생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어서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내내 고마웠다는 말씀 전하면서 맺겠습니다.

2022, 12월 11일, 강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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