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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12. 2022

기도 69-1

함라산을 먹는다

2022,1212, 월요일


주식은 - 그 주식 株式 아니라 주식 主食입니다 - 제가 주로 먹는 식단은 함라산입니다. 조리시간은 15분쯤 듭니다. 필요한 재료는 산에 가야겠다는 마음과 옷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서는 동작, 일단 그 두 개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 없이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은 사람마다 거기에 넣어 먹는 재료가 다릅니다. 기호에 따라 다양한 요리법이 있습니다. 여럿이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주로 혼자 끓여서 즐기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음악은 꼭 넣어서 먹습니다. 고상한 것이 아니더라도 좋지만 즐겨 듣다 보면 자연스레 클래식 같은 곡을 타고 사람이 떠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같은 익숙한 이름들을 만나게 되는 능선을 좋아하다가 그들의 짧은 생을 동정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서른다섯, 서른하나, 서른아홉, 모두들 구름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발목이 언뜻 보이는 마루에 서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금강 錦江의 발목이라고 부릅니다. 언제 보더라도 잔잔함이 흐릅니다. 얼굴은 미추 美醜를 반영하는 거라 좋고 싫은 것이 있지만 발목은 색 色을 이겨낸 색 色 같아서 좋습니다. 그것은 무지개일 수도 있고 화동 花童의 꽃무늬가 되기도 합니다. 발 發 하지 않고 사람을 동하게 하는 것이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Mary Du Pre, 첼리스트, 1945-1987)의 첼로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함라산을 먹으면서 음악을 곁들이면 속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을 한 번씩 식사에 초대합니다. 내 나이가 덧없이 많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토닥거리는 힘은 그만큼 좋아진 듯합니다. 서른에 떠난, 마흔다섯에 떠난 사람들을 위로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이 식사를 통해서 제가 얻는 에너지입니다. 어제는 그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래알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그 말 하나가 밥을 먹는 도중에 씹혔습니다. 깔깔한 것도 같고 뭉친 것도 같고 삼킬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혀 밑에 두고 놀리면서 밥 먹는 내내 한가로웠습니다. 모래알 하나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편할까, 은근히 기대됐습니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아직 남은 파란 이파리에 오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나뭇잎 뒤에 가로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고 이게 바람이 앉았던 자리라고 표시를 합니다. 숲에는 12월이 없어서 아쉬운 것도 새로 맞을 것도 없어 보입니다. 자연은 시간과 맞서지 않고 시간과 한 몸인 듯 거기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만 마삭줄이 아직 생생하다느니, 봄이 오면 여기서 꽃이 핀다는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사람을 떠나서 자연에 깃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다 한가롭지 못해서 이런저런 시늉으로 요리를 합니다. 내 발목은 나보다 숲을 연모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마음이 저를 표시하기 가장 좋은 자리가 발목 아닐까 싶습니다. 금강이 고요합니다.




함라산은 나를 돕습니다. 주로 그것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청암 호수를 찾거나 미륵산을 돌아봅니다. 따로따로 있으면서 서로서로 돕는 이치를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팍팍하다 싶으면 호수를 말아서 후루룩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후루룩 마시지 못합니다. 모르셨지요, 그거 하나도 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식사법이라는 것을. 위 胃 없이는 아무것도 후루룩 마시지 못합니다. 미륵산은 심사 心思가 외로우면 좋습니다. 바위를 손바닥으로 만져가며 오르는 것이 그날은 좋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 것입니다. 이중섭이 생각 나도 좋을 것입니다. 끝없이 ´소´를 그렸던 힘 있는 화가. 그러나 그도 마흔에 떠났습니다. 미륵산에 오르는 날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합니다. 이젤을 세워놓고 불을 쬐어가면서 날랜 그림을 한 장 그릴 줄 안다면. 그 그림은 누구를 닮았을까 궁금합니다.




12월 12일, 낯설지 않은 숫자들의 조합입니다.


아침에 뜻하신 것들을 저녁에는 두 손에 담아 돌아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식사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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