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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21. 2022

기도 77-1

무엇을 속에 넣고

2022, 1221, 수요일



이상할 정도로 계속 불편하게 엮이는 상대가 있습니다. 생각을 바꿔, 그러지 말고 잘 지내보려고 하는데도 결국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럴 때면 두 배로 더 속상합니다. 당연히 원망스럽습니다. 특히 관계의 기본적인 일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분노 게이지는 수직 상승합니다. 아니면,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상대가 무슨 일을 하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모릅니다.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르고 지냅니다. 1년이 가도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내키지 않지만 ´하루만 참자´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아니면,




무엇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사이가 있습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느라 입이 한가롭기까지 합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망울에 눈부처*가 오뚝하니 서 있습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하는 저것은 무엇일까,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닳아질까 봐 상대를 아끼는 사람들.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지내는 관계도 많습니다. 때가 되면 모이고 때가 되면 흩어집니다. 곁에 있으면 성가시고 없으면 심심합니다. 한 집에 머물고 있지만 각자의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반가운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모호한 표정으로 하루 이틀 사흘,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석 달, 송창식의 노래처럼, 일 년 이 년 삼 년, 눈치만 살피다가 지내는 한평생.




늘 그렇게 살 수는 없는데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냐면 바로 ´임신´입니다.


열 달 정도 자기 뱃속에 넣고 태아를 돌보는 마음과 자세를 따라갈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했을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야 그만한 불편이 어디 있냐며 항변하고 싶겠지만 - 제대로 누워 잘 수도 없고 숨차고 허리 아프고 거기에 입덧까지.... 악, 소리가 날 것도 같습니다. - 그 덕분에 얻는 기쁨과 환희, 그리고 간절한 것들, 평소에 생각하지 못하고 지내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이 무거워도 천사처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시절입니다.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관계를 잉태한 채로 살아가고 있구나. 나와 너의 관계, 나와 나의 관계, 나와 나를 살리는,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들, 책이며 음악이며, 돈이며, 술과 담배 같은 것들,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들. 감정마저도 내 안에서 내가 지켜야 하는 ´상호 관계들´, 실제로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줍니다. 믿음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한 줄이라도 적어 건네는 것이 이로울 듯합니다.




¶ "하지만 그때도 나는 그들에 대한 자비의 감정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긍정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하지만 나의 정서는 비록 거기 부정적인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또 있습니다. 자비를 키우는 것은 오랜 수행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아주 힘든 일도 아닙니다. 나는 이른 아침마다 몇 분씩 자비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명상, 분석적인 명상이지요. 물론 나는 매일 아침 이타주의로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공을 이해하면 자비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강한 자비심을 갖게 해 준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과 자비, 지혜와 방법. 이것은 달라이 라마의 수행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두 기둥이다. 지혜만 있고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산속에서 풀이나 뜯어먹고 사는 외로운 은자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지혜가 없이 자비심만 있는 사람은 호감 가는 바보일 뿐이다. 지혜와 자비는 둘 다 필요하며, 서로를 키워 준다. - 용서, 달라이 라마, 빅터 챈 -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




내 안에서 뛰어노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이 유기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유기체를 이루는 하나의 세포가 됩니다. 세상은 나를 품고, 내가 뛰노는 것을 즐깁니다. 나를 보호합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다른 생명을, 그 생명은 그 안에 것을,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내가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심히 걷고 살펴서 먹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듯합니다.





* 눈부처 -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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