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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22. 2022

기도 78-1

측은지심

2022, 1222, 목요일



어제 공교롭게도 두 엄마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카톡에 다른 하나는 카페에 적혀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카톡 창에 쓴 고백입니다.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이렇게 널리 펼쳐 보이는 것은 그림이 좋아서, 그러니 너그럽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 저도 방금 학원 픽업시켜주면서 핸드폰 문제로 아이에게 호통을 쳤는데 맴이 안 좋네요. ~~모든 부모의 마음~~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네요. ~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감사합니다.




마침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 나왔던 3분이 채 못 되는 이야기 하나를 음성 파일로 전달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꼭 안아주던 피자 배달원의 사연이었습니다.




사람이 말썽이 많습니다. 사람만큼 확실히 지구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입히고 있고 앞으로도 입힐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앙팡테리블*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또한 희망입니다. 사람이 변하면 모두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일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야말로 이 행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따뜻해지기로 하면 불길도 마다하지 않고 물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직감합니다. 가난한 여인이 남을 돕고 팔 없는 사람이 팔 없는 사람을 안아줍니다. 그것이 사람이 갖고 있는 힘입니다. 사람은 놀랍습니다. 다른 사연도 하나 올라왔습니다. 요즘 물가가 무척 비싸졌는데 ´카페´에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와서 이야기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 카페도 곧 6년이 됩니다. 커피 한 잔 팔아본 적 없는 카페입니다. 아, 오늘은 좀 길더라도 그 카페에 첫날 썼던 제 이야기도 동봉할까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던 때, 가을날 마른 잎사귀같이 속이 버석거리던 날에 아무 말이라도 써놓고 싶어서 만들었던 곳이었습니다. 역시 저는 말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늘 언제쯤 문을 닫을까, 생각하면서 문을 여는 곳입니다. 가끔 멤버 예순두 분의 아이디를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누군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어쩐지 알 수 있습니다. 서랍 속을 들여다보는 듯 잠시 상념에 빠지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 너무나 오랜만에 글을? 편지를 써봅니다.


자꾸만 축약시켜 말하는 요즘 초성만 쳐도 제법 소통이 되는 시대에 편지라는 말이 참 많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너무 편리한 카톡이란 앱을 통해 우린 서로의 기분이나 마음을 전달하죠 그게 가장 빠르고 또 상대방이 읽었는지


1을 통해 쉽게 알게 됩니다.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조금만 서버가 느리고 계속해서 뱅글뱅글 화살표가 돌면 우린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새로고침을 누르곤 합니다.


기다림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설렘과 기대를 선물하기보단 답답함과 불쾌함으로 서로를 위한 배려보다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재촉을 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주를 하듯 우리 아이를 그렇게 키운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조급함에 아이는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하라니까 해야 되니까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일조차도 묵살당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됩니다.


충분히 시간을 주고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줬더라면 우리 아이의 삶이 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미리미리 가지치기를 하고 정리해 주고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 길을 안내합니다.


예쁘게 키워질 나무의 떡잎을 떼어버린 건 아닌지...




다시 되돌아간다면 달라질까요?


학원 하루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단어 시험이 뭐 그리 중요했던지 참 바보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두세 명 받는 개근상에 우리 딸이 받더군요 아프면 하루 쉬어도 될 텐데 참 열심히 다녔어요


생리통이 심해 창백한 아이를 진통제 먹여 보냈던 게 개근상이 미련상 같았어요


정말 미련한 엄마였어요 하루 푹 쉬게 해 줄걸,,,


그런 아이가 곧 26살이 됩니다.


예쁘게 자라줘서 고맙고 힘든 직장 생활 잘 버텨줘서 대견합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다고 미안했다고 전하고 싶네요




오랜만에 카페 들러


편지를 남겨봅니다.




- 아이디 : 항상 그 자리




그러고 보면 저도 ´공동체´라는 것을 어렴풋이 동경하는 듯합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공동체 지향적입니다. 가족, 친족, 마을, 학교, 국가,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형태 있는 것은 공동체로 운영됩니다. 지식, 생태, 종교 공동체가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나와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이 가리켜 줍니다. 그들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아마 같이 쓰고 같이 읽고자 했을 것입니다. 실패 같은 ´달달한´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세월 써온 것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패와 성공, 그 어느 것을 선택하지만 그것이 없는 것임을 글이 알려줍니다. 그래서 글이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쓰는 글이 사람보다 침착합니다. 방금 위에 봤던 글도 아름답습니다. 어머니가 잘 보이지 않으십니까.






¶ 2017년 7월 14일 금요일에 그와의 카톡을 공개합니다.




형님!!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요즘 항암약이 바뀌고 나서 너무 힘이 드네요.


입맛도 없고 머리도 빠지고 괴롭습니다.


힘을 내자 굳게 맘을 먹어도 자꾸 지칩니다.




형님


목소리라도 듣고 힘을 내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한가하실 때 목소리 한번 들려주십시오. 오전 8:39






종윤!




고생이 많지?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사람이니까!!


이겨내라고 응원할 수밖에 없어.


다른 어떤 것도 지금 이 순간은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


오로지....


살겠다는 의지와 살려달라는 기도만으로 24시간을 꼭 붙잡고 매달려야 해!


간절하고 간곡하게 다시 한번만 건강해질 수 있기를 빌어야 해!


힘을 빼고서도 걸을 수 있듯이 힘들 때 무리해서 힘을 내기보다는 힘은 따로 떼어놓고 공기처럼 가볍게 움직여 보는 거야.


마음이, 모든 것은 마음 작용이라니까!


마음을 항상 꽃밭에 뛰어놀게 해 줘.


나도 서울 와서 검사받고 하느라 이제 수면에서 깼거든....


집에 가면 맑은 정신으로 통화하자고~ 오전 10:32






네 형님


문자만으로도 목소리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게요. ^^ 오전 10:35





나와 같이 2인실에 열흘 동안 머물렀던 인연으로 나를 형님이라 불렀고, 어색해하면서도 나는 그를 동생이라 불렀습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누구 씨라고 부르고 말았을 겁니다. 친동생도 동생이라고 불러본 적 없는데 나를 형님이라고 흔쾌히 부르는 그를 지나가는 사람 대하듯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진한 의형제를 맺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프니까. 많이 아픈 사람이니까 서로에게 서로가 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열흘 밖에 안 된 인연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다. 그 후로도 종윤이 동생은 더 아프고 힘들 때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한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 넷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감성팔이라는 말, 많이 경계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고백하면 그 이름들이 가득 차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도 없는 들판에 나가 담배를 두 개비 피우고 돌아옵니다. 1년에 한두 번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게 감성팔이라면 나는 감성팔이꾼이 맞습니다.




아침부터 길게 시작해서 사람을 부산하게 만든다는 하소연이 들리는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제 일을 마치고 판공성사를 보러 갔습니다. 고백 성사를 보러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진 것입니다. 경기는 좋지 않은데 죄는 풍년이라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하고 저녁을 먹고 볼링장에 있었습니다. 근 10년 만이었습니다. 아직 성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럼, 가야지...


아이들과 충분히 놀고 헤어졌습니다. 그러고도 고백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성사를 봤습니다. 그날 낮에 제가 읽었던 문장은 꽤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그녀를 오후 내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월세 10만 원짜리 집에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함께 살았고, 주워 온 박스로 만든 옷장에는 쥐가 똥오줌을 싸고 갔다. 여름에는 창문에 말벌집이 생겨 119를 불렀고, 겨울에는 집안에서도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기름보일러가 달린 집을 전전하면서 단 한 번도 기름을 사지 않았다. 그러면서 적금을 붓고 보험금을 냈다. 빚이 아닌 내 돈이 든 통장을 들고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친구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 9000원짜리 신발을 고쳐 가며 신었다. 온갖 아르바이트는 물론이었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타 대학교 앞, 아파트 단지, pc방,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팔았다. 그래도 생활비가 부족해서 나중에는 대학교 동기와 선배들에게 팔고, 믿지도 않는 교회에 다니며 신자들에게까지 팔았다. - 날것 그대로의 섭식 장애 중, 정유리 -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내 부모가 고마운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배운 것이 없어서 거칠기도 했지만 내가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은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있습니다. ´있는 거 같습니다´라고 써지는 것을 몇 번이나 고쳐서 ´있습니다´로 쓰는 것, 그것이 믿음인가 봅니다.




다른 사람의 빵이 얼마나 쓰고 다른 사람의 계단이 얼마나 가파른지 그대 스스로 겪어 봐야 할 것이다. 그 유명한 단테, <신곡>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오늘 아침은 몸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새벽 운동을 양껏 한 것 같습니다. 공기는 차고 아직 마이너스 기온입니다. 동짓날입니다. 같이 팥죽 한 그릇 나누면 좋겠습니다.




* 앙팡테리블 : enfant terrible, 프랑스 문학가인 장 콕토 (Jean Cocteau)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된 말. ´무서운 아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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