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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20. 2022

기도 76-1

이 선물 어때

2022, 1220, 화요일

어제 책 두 권이 배달되었습니다. 책을 보내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연말연시를 여는 안부 인사도 겸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짧은 메시지로 대신했습니다. 올해의 마무리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회장님.


보내주신 빛무리* 두 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아쉬운 것들이 어디 숨었다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기분입니다.


끝내 찾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어쩌나 싶은 것들....


그것들과 해후하시고 경쾌한 새해 맞으셨으면 합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열흘은 많지는 않아도 적어 보이지도 않아 좋습니다. 군대를 제대하던 때도 그랬습니다. 열흘을 남겨두고 하루에 한 통씩 그동안 고마웠다고 편지를 적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거기 그렇게 적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마지막 쓰는 ´군사 우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퀴즈를 하나 내볼 생각입니다.


이런 선물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 그러니 노자 풍으로 말하면, "선물을 ´선물´이라고 하면 선물이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선물이 선물임을 의식하는 순간 받는 이에겐 채무감이 생기고, 주는 사람도 뭔가 해주었으니 돌아올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선물이 아닌 ´교환´이나 ´채무´가 된다. ´선물의 역설! ´ 이런 이유에서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선물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한다.


- 이진영, 불교를 철학하다 102p.




어렵겠지만 너희는 진짜 선물을 찾아볼 수 있겠냐고 문제를 낼까 합니다. 어디에 가서 그것을 찾을까. 조금 궁금해보기로 합니다.




가장 흔하게 듣는 오류 중에 하나는 그 말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보험 들어줬잖아. ´


필요하지 않은데 손해를 보면서까지 들고 말았다는 뜻인지, 갸우뚱할 때가 있습니다. 설령 인정상 그랬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꼭 기회만 되면 그 말이 입안에서 돌돌돌 도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싶습니다. 사람이 겨우 그렇습니다. 보험 하나도 그러는 형국이라 무슨 관계마다 촘촘히 엮여 있습니다. 상관관계, 하지만 이런 상관관계하고는 영 다릅니다.




¶ 이것을 인간 차원으로 바꾸면 이렇다. 카불이나 바그다드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잠자리에 들 수 없다면 나의 딸들도 그럴 수 없게 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에게 있어, 생명 현상은 어느 것 하나 뗄 수 없이 서로 연결된 유기적인 통합체이다.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홀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잘 알려진 티베트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존재는 한때 우리의 어머니였으며, 우리도 한때는 그들의 어머니였다. ´


이런 통찰력은 인내심을 갖고 다른 존재의 행복을 위해 힘쓰도록 우리를 격려해 준다. - 용서, 달라이 라마, 빅터 챈 130p.




92년 12월 17일 소인이 찍혔으니까 정확히 30년 된 편지였습니다. 밸런타인 30년 산은 백만 원이 훌쩍 넘을 것입니다. 종이와 잉크 향이 진하게 풍기는 편지가 내게 있었습니다. 그랬을까요, 이 친구가 유명해져서 이 편지들이 엄청 비싼 값으로 팔리는 꿈이라도 꿨던 것일까요. 친구가 그랬습니다. 너는 이사도 안 다니냐고?


맞은편에 앉은 애들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항상 그거부터 챙기는데... ´




눈 내리는 날, 친구는 와이프하고 모처럼 시내 영화 구경을 다녀오던 참이었습니다. 그날 보기로 했던 약속은 눈 때문에 취소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겨울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친구 와이프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수덕이 하고 치맥 하면서.... 안주 삼아 보면 좋을 거 같다~´




친구 와이프도 어릴 적 친구입니다.




오래전에 나에게 편지를 썼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마음을 떠먹는 사람이라서 편지가 맛있는 줄 압니다. 그 맛이 좋아서 오래 두고 기억합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선물은 오래 간직했던 것을 돌려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회한에 잠깁니다. 그 시절에 내가 이랬던가, 묻고 웃고 깊이 숨을 쉬며 다시 들여다봅니다. 주식이었으면 몇 배였을까요. 몇 백 배쯤 되었을까요.




30년 묵은 편지 한 통이라도 갖고 있다면...




내게 남은 편지들은 또 세월을 지날 것입니다. 벌써 어느 날 어떻게 그 편지들을 건넬지 구상이 끝났습니다. 이 묵상을 적는 중에 떠올랐습니다. 맑은 장면이 될 듯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빛무리 - 전주교구 가톨릭문우회에서 1년에 한 번 발행하는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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