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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19. 2022

기도 75-1

같은 값이면

2022, 1219, 월요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알아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동가홍상 同價紅裳은 옛날 기방에서나 쓰던 말입니다. 같은 값이면 젊은 여인이 좋다는 것입니다. 말은 물과 같아서 시대를 따라 흐릅니다. 너른 평야를 적시기도 하고 좁다란 골짜기에서 물살이 급해지기도 합니다. 세상 유람을 하면서 사람들과 사건들을 모두 씻어줍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모습은 시절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과 물은 마치 의형제 같습니다. 담고 적시며 흐릅니다. 물 위로 말이 떠가는 것을 상상합니다. 내 말이 꽃잎처럼 저기 흐른다면 나는 무엇을 거기 적을까 싶습니다.

어젯밤에 한 편의 시를 생각나는 대로 보냈습니다. Kenny G의 색소폰이 듣기 좋아 그것을 전하려다, 정호승 시인의 시가 손에 잡혔습니다. 그래서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그 말을 떠올리며 톡, 톡! 하나씩 날려 보냈습니다. 눈송이를 날리 듯이 그래 봤습니다.




¶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이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 정호승,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젊은 학생이 낭만이 뭐냐고 묻길래 연애가 뭐냐고 되물었습니다. 아는데 설명이 어렵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웃냐고 또 물었습니다. 설명은 어렵지만 좋은 느낌이라고 그럽니다. 그게 ´낭만´이다고 일러줬습니다.


시를 쓸 때 그 낭만이 나를 관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시를 쓰지 못합니다. 덜 낭만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늙은 어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종이에 이 시를 적어서 관 棺에 함께 넣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슬프다고 했고 누군가는 감동이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멋지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연애처럼 사는 것이 좋고, 낭만적인 것이 낫고, 시를 쓰는 사람이 편하겠다. 그런 사람이 가족이며 친구며 동료라면 좋겠다. 내가 다니는 곳에 그 사람이 있다면 걸음이 가벼울 것 같고, 내가 밥 먹는 곳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밥이 더 영양가 있겠다. 풍경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풍경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풍경을 선물하는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덜 외롭겠다. 눈이 내리니까, 비가 오니까, 바람이 부니까, 그가 나를 찾는 이유가 아무 이유가 아닌 것을 알고서 나는 수줍을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해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행복하다, 고 써보는 일이 잦아질 것입니다.




날은 춥고 길을 미끄럽습니다.


게다가 월요일입니다. 우리가 더 낭만적이어야 할 시간입니다.


불안을 덜어주는 위로, 자장가는 내가 여기 있다는 부드러운 신호, 약속, 노래입니다. 12월은 자장가와 캐럴이 어울리는 하늘입니다.



*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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