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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30. 2022

기도 82-1

다윗도 솔로몬도

2022, 1230, 금요일



아버지 헤로데는 로마의 2차 삼두 정치의 주역인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도움을 받아 유대 왕이 됩니다. 그는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영아 학살을 주도합니다.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게 말합니다.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의 목을 원했고 요한은 참수당합니다.




다윗은 팔리스틴의 골리앗을 물리치고 고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됩니다. 그는 부하 장수 우리야를 전쟁터에 나가 죽게 만들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지혜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로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그의 말년은 사치와 방탕의 연속이었으며 그가 죽고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집니다.




왕은 그런 자리였습니다. 왕은 백성을 위하느라 백성을 죽였고 백성을 먹이느라 백성에게서 빼앗았습니다. 왕의 꿈을 21세기에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왕의 꿈. 손바닥에 새겨 그 꿈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아들이 커가면서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사이가 더 멀어지지 않도록 차라리 조심하는 것도 같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그렇게 닮았으면서 또 그렇게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샤워를 하는 산이는 늘 수건을 잊고 욕실에 들어갑니다. 다 씻고 나면 언제나 엄마를 부르고 동생을 부릅니다. 그때마다 했던 말, ´수건 챙겨라´는 말을 아마 내일도 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불러도 대답이 없자, 그대로 욕실 안에서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뻔히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아는데도 수건을 가져다 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할 일로 바쁜 거 같아, 잠시 기다렸다가 수건을 찾아 욕실 손잡이에 걸어줬습니다. 내가 아내를 나보다 격이 높게 여기는 바탕은 그러니까 이런 대목입니다. 마치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수건을 찾아줍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챙겨 가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그 반복이 무신경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무신경을 대하는 수준이 아내와 저는 다릅니다. 차원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포기한다면 아내는 비워둡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릇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같은 그릇이 아닙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담아야 쓰는 그릇인데 아내는 무엇인가를 담지 않고도 쓰는 그릇입니다. 내 안에는 물이든 음식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효용´을 가치로 둡니다. 그러나 아내의 그릇을 볼 때마다 빈 것을 봅니다. 허공이 그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을 그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때가 가끔 있습니다. 길은 내가 더 걸었는데 삶은 그가 더 살았습니다. 길이 가르쳐 준 것보다 삶에서 배우는 것이 유연한 거 같습니다.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 그녀는 딸을 부추깁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물어 가는 석양빛에 내 모습을 비춰 봅니다. 하늘에 비친 모습이 과연 어떨까.


나는 어느 왕조의 얼굴을 하고 어느 임금의 말을 하며 어느 백성의 꿈을 꾸고 있는지, 어떤 아들이며 어떤 아버지로 살고 있는지 때때로 궁금합니다.




벌써 12월 30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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